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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인생, 매순간 혼신 다해야"

인터뷰 경기도립극단 '잃어버린 세월'

"옆으로 세 발짝, 뒤로 두 발짝 자, 이번엔 터언∼"
제 45회 정기공연 '잃어버린 세월'(원작 형제별. 대본 국민성. 연출 문석봉) 막바지 연습으로 정신이 없는 경기도립극단(예술감독 문석봉)을 공연 1주일이 채 남지 않은 지난 3일 찾았다.
극단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무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극단 단원들의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연습실 한쪽 귀퉁이로는 대본을 뚫어져라 째려(?)보며 각자 연습에 치중하고 있는 단원들의 모습이 보이고, 한쪽 구석으로는 식사할 겨를도 없었던지 연습도중 먹었음직한 음식 그릇들이 밀쳐져 있다.
연출을 맡은 문석봉 감독이 '객석에게 일방적 말하기'식의 구조를 지양하기 위해 세미 뮤지컬 형식을 약간 띄도록 가무(歌舞)에 신경을 썼다는 연출의도가 이들의 열정적인 연습장면에서 느껴진다.
잠시 뒤, "어이쿠 왔어요. 이쪽으로 오시죠." 문 쪽에 서 있는 기자를 발견하고 가장 먼저 반기는 극단 기획실장 박종찬씨.
주인공 인터뷰를 사전에 요청하고 찾아간 터라 박 실장은 바로 연습실에 달린 작은 휴게실로 방문인을 안내한다.
문 앞에 이르니 문틈 사이로 한 맺힌 절규를 내 뱉는 듯한 중년남자의 음성이 들려온다. "닥쳐! 왜 하필 우리 부모냐구. 왜 죄없는 우리 부몰 돌아가시게 했냔 말야."
이어 들려오는 힘없는 중년여성의 목소리. "우리 인연도 참말로 질기네예. 당신 보는 앞에서 칼이라도 물어야 됩니꺼. 그라모 당신 그 가슴에 맺힌게 좀 풀리겠습니꺼, 예."
울분으로 가득 찬 '나사장'과 '정순'의 대화에 잠시 기자가 끼어든다. 조금전의 대화톤과는 전혀 다른 두 배우의 미소 띤 얼굴이 인자하게 이 방해자의 침입을 수락한다.
이들이 바로 도립극단의 이번 연극 '잃어버린 세월'에서 대조적인 두 배역을 맡은 주인공들이다.
이 작품은 극작가 국민성씨가 도립극단 공연방향에 따라 집필한 원작 '형제별'을 토대로 한 국내 초연 작품. 해방 이후 좌우익의 이념대립과 전쟁, 도시화와 산업화로 이어지는 사회적 변화속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채 힘든 과정을 견뎌야 했던 어느 가족의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통적인 한국의 어머니상인 '정순'역의 단원 김미옥(50)씨. 이와는 정반대로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얻지 못한 채 이번 연극에서 악역을 맡은 '나종필' 역의 임찬호(45)씨다.
정순역의 김씨는 연기 경력만도 30년이 넘은 베테랑으로 도립극단에 들어온지 12년이 넘은 극단의 대선배다. 앳되어 보이는 얼굴과는 달리 쉰 살이 됐다는 그녀는 이번 '정순' 역이 다른 배역을 연기할 때보다 더 편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배역을 소화하기는 결코 쉽지 않아요. 하지만 '정순'은 우리 어머니 세대의 전형적 인물이잖아요. 그래서인지 내 어머니를 연상시키는 이 역에 더 강한 매력을 느끼게 되죠. 나도 모르게 정순을 연기하다보면 감정이입이 돼 버리곤 하죠."
배역에 대한 강한 매력을 느끼기는 임씨도 마찬가지. " 악역인 '나종필'역은 배우라면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욕심나는 역할입니다.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이 악역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되죠. 그렇지만 그는 분명 '불행한 사람'입니다. '나종필'이 오랜 시간 복수를 꿈꾸는 이유가 단지 '사랑' 때문이라고 봐선 안되죠. 6·25라는 시대적 상황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어요. 억울하게 총살당한 부모님에 대한 원한을 말이죠."
나종필은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빨갱이로 몰려 억울하게 총살당한 부모님에 대한 원한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그런 그는 '도박'이란 물질만능주의 수단을 이용해 복수를 향한 계단을 밟아간다. 이데올로기라는 비극으로 인해 억울하게 목숨을 잃어야 한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한 인간을 가장 잔인하게, 악랄하게 만든 원인이었다는 것이 임씨의 설명이다.
임씨가 연극을 시작하게 된 것은 1977년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들어간 이후부터라고 한다. "성우의 꿈을 안고 학과를 선택했는데, 그만 연극의 매력에 이끌리게 된 거죠. 한 때 경제적 어려움으로 택시운전도 해보고 여러 가지 다른 일도 해봤어요. 하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더라구요. 2년 정도의 방황을 끝내고 연극계로 다시 돌아왔죠. 그 때 '아 연극이 바로 내 본연의 일이구나'라고 새삼 깨닫게 됐어요."
선배인 김씨가 연극을 결심한 것은 고3때 YMCA에서 마련한 연극무대에 오르면서부터다. 당시 한국무용을 전공한 김씨는 자신에게 연극에 대한 열정과 끼가 있음을 새삼 확인하고 이후 서울예전 연극영화과에 들어가게 됐다.
"연극에 입문한지 30년이 넘었지만, 한해도 쉰적이 없어요. 작은 배역이든 주연급 재역이든 적어도 1년에 한차례는 무대에 올랐어요. 연기 이외에 다른 것은 생각도 못해봤죠."
하지만 김씨는 아직도 자신이 '배우가 맞나' 라고 자신에게 되묻곤 한단다. 이게 바로 그가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연극은 인생입니다. 무엇보다 연기에 대해서 겸손해야 하지요. 요즘 젊은 연기인들을 보면 자신이 대단한 실력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거나 재능을 믿고 노력을 안하는 경우를 종종 봐요. 하지만 또다른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연극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겁니다."
임씨 또한 여기에 동조한다. "저도 김 선배와 같은 말을 하고 싶어요. '연극은 바로 인생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요. 순간 순간 열심히 하고, 자신이 '배우'라는 인식을 저버리지 않는다면 항상 기회는 주어지게 돼 있죠."
전통적 한국 어머니 '정순', 그리고 시대가 낳은 비극적 인물 '나종필'. 오는 7일부터 11일까지 경기도립문화예술회관 소극장 무대에서는 도립극단 두 주역 김미옥씨와 임찬호씨를 통해 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고난과 질곡의 역사를 살아온 한 가족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일시 9일(수)∼10일(목) 오후 7시30분, 11일(금)∼12일(토) 오후 4시·7시30분, 13일(일) 오후 5시. 입장권 A석 8천원, B석 5천원. 예매 www.kyculture.or.kr. 230-3241)
정수영 기자 jsy@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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