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지난 날의 꿈이 양상동에 있습니다. 제가 쓴 최초의 시집이 ‘지난 날의 꿈이 나를 밀어 간다’입니다. 평생 처음 화장장 문제 때문에 1인 시위를 하면서 ‘나의 지난 날의 꿈은 어디에 있나’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정치가 어디를 향해, 누구와 함께 나아가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고민까지 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저는 양상동을 사랑하고 양상동 주민들을 사랑합니다. 제가 아침에 나오지 않으면 밤잠을 설친다는 양상동 어머님들을 생각하면 저는 너무 행복한 사람입니다. 제가 무엇인데 이런 과분한 사랑을 받는단 말입니까? 시골 중국집 주방장 아들인 저는 못 배우고 가난한 부모의 숟갈 손톱을 양상동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그 분들의 순박하고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 와 이 겨울이 따스하고 행복합니다.
추모공원인가, 화장장인가도 필요하지만 그 누구도 이분들의 행복한 삶과 평화를 무너뜨릴 수는 없습니다. 제가 표를 생각하고 선거를 의식해서 그런다는 비아냥을 시의장을 비롯한 지역정치인들이 말한다고 합니다. 제 인생이 다 허물어지는 느낌입니다. 다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그동안의 제 모습이 그랬던 게지요.
하지만 저는 이번 갈등이 화장장 혹은 님비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민선 지방자치의 근본취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지역정치인들이 반성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합니다. 민선시장을 시민들의 투표로 선출하게 한 것은 권력을 지역 시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한 것입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본부터 지금 다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시의원들도 이 추운 겨울에 떨고 있는 주민들의 문제를 의회로 수렴하는 데 망설이지 않아야 합니다. 시의회의 역할이 갈등을 조정해 민주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 아닙니까? 물론 지금 이런 안산의 정치현실에 대해서는 저도 책임을 통감합니다. 제가 타협해온 탓도 있습니다.
수천만원의 시정홍보비에 따라 지역언론과 여론이 왜곡되고 현수막 한 장, 유인물 한 장을 찍는 일조차 눈치를 보아야 합니다. 노인회를 포함해서 관변 단체와 소위 시민단체까지 모두 양상동 주민들을 외면하는 이 기막힌 현실 속에서 일사분란하고 완벽하게 양상동은 고립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양상동에서 300년 넘게 이 지역을 지키고 도시농업으로 토마토와 오이를 기르는 순박한 양상동 주민을 버리는 것이 저의 정치가 돼야 합니까?
지금 밝혀지고 있는 상황이이지만 채산성도 경제성도 없는 대단위 화장장을 기본적인 검토도 미흡한 가운데 밀어제끼는 행정이 이 도시 말고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벌써 경기도의 화장장이 과잉으로 드러난 지금 화장기 6대와 보조기 3대, 그리고 유골함 3만기가 어디에서 그 수요를 찾는단 말입니까? 수원 연화장 9기, 성남 15기, 12월이면 용인 10기 외에도 양주, 포천, 시흥, 화성 등에 화장장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연화장급의 화장장을 톨게이트에 설치한다는 생각을 누가했단 말입니까?
700억에서 1천억 원을 들여 이런 일을 벌일 만큼 이 도시는 여유롭고 오직 이 문제에만 머물러야 한단 말입니까? 그 사이에 화성, 동탄 천안에는 삼성반도체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공장등 대기업이 속속 들어서고 있습니다. 대기업 유치를 위해 뛰어야 할 기업유치와 직원들이 화장장에 묶여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통탄할 일입니다
옛날 산헤드린을 구성한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에 몰려 십자가에 달린 예수조차 철저하게 권력에 포위되고 다수의 폭력 앞에 침묵을 강요받지 않았을까요? 화장장 문제로 시작 되었으나 저는 이 과정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지금 누가 고통 받고 있습니까? 지금 누가 약자이며 누가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까? 지금 이 땅에 예수님이 계시다면 틀림없이 양상동 주민들의 한숨과 눈물을 외면하지 말라고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저의 신앙고백입니다.
제가 다니는 성당에 추운 겨울 서명을 받으러 양상동 주민들이 찾아 왔을 때 그분들에게 성당 안으로 들어와 서명받으라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비겁하고 저의 신앙이 얼마나 나약한 것인가 분노하고 있습니다. 과연 내가 믿는 하느님이 이런 분이던가! 찬성하는 분들도 있고 반대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 추운 겨울 호호 떨며 서명을 받는 그 분들을 성당 안으로 들어오게 하면 안 되는 것일까요?
누가 이분들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평화롭게 농사지으며 사는 삶을 흩뜨릴 권한이 있습니까? 어찌 보면 우리는 다 외지인들로 안산에 남은 거의 유일한 자연부락 주민인 이 분들이야 말로 안산의 뿌리이며 역사가 아니겠습니까? 누가 누구를 내 쫓고 누가 누구에게 그들이 원치 않는 일을 강요한단 말입니까?
저는 이번 일을 통해 아직 이 나라의 민주주의에 더 많은 진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안산의 민주주의 토대가 너무나 미약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적당히 타협하고 온정적으로 살아 온 제 삶을 다시 바로 잡아야겠습니다. 가난하고 힘 없는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는 일을 해 나갈 생각입니다.
양상동에 화장장을 추진하고자 하시는 분들 열심히 그 일을 하십시오. 저는 그 일에 가담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끝까지 양상동 주민과 함께 하겠습니다. 양상동은 나의 지난 날의 꿈이었습니다. /김영환 민주당 안산상록을 국회지식경제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