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거상 임상옥. 그가 인삼무역권을 독점하자 베이징 상인들은 불매동맹(不買同盟)까지 맺었으나, 결국 임상옥의 수완으로 태워버린 홍삼의 가격까지 포함해 원가의 수십 배에 사들인다.
명품이란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으로 오랜 역사와 만든 이의 장인정신, 그리고 쓰는 이들로 하여금 사랑받는 품질이 결합된 작품을 말한다. 상인들이 이문도 없는 거래를 하지는 않을 터, 수십 배나 높은 금액에 상인들의 이문까지 얹어서라도 사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음은 우리 고려인삼이 중국에서 당대 최고의 명품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세계 최고라는 자만감에 도취해서였을까? 최근 세계 최대 인삼 시장인 홍콩에는 미국·캐나다의 서양삼인 소위 화기삼이 몰려와 고려인삼을 위협하고 있다.더욱이 효능에 대한 과학적 연구 소홀 등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대적인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고려인삼의 입지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그런 고려인삼에게 다시금 옛 명성을 되찾아주기 위한 움직임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먼저 소비자의 트랜드에 발맞춰 다양한 연구를 통한 고부가가치 상품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고, 신뢰도 향상을 위한 고려인삼 안전성관리 체계도 강화하고 있다. 또한 세계시장을 겨냥해 효능의 우수성 확보를 위한 과학적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시장의 다각화를 위한 해외마케팅 확산에도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고려인삼의 명품화를 위해서 그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다름아닌 원료의 표준화다.
원료의 표준화 없이는 고부가가치 상품개발과 소비자 신뢰도 향상에 한계가 있다. 현재 한국의 인삼 수출은 뿌리 삼 형태 또는 단순 건강식품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보다 과학적으로 인삼 성분을 표준화해 이를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전환해야 하며 제품의 균일화로 소비자 신뢰도 향상에도 힘써야 한다.
프랑스의 보르도 와인, 자메이카의 블루마운틴 커피. 세계 최고급 와인과 황제의 커피라 일컫는 이들에게도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 외에 천혜의 기후조건을 갖춘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포도와 커피만을 원료로 사용했다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고부가가치 상품개발에서 원료 표준화의 중요성이 우선적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제품명에 천혜의 기후조건을 가지고 있는 한반도의 재배 지역명이 표기되는 것, 즉 지역적 표준화 또한 소비자의 신뢰도 향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인삼 한 뿌리 나오지 않는 나라 스위스의 파마톤사는 인삼에서 사포닌 추출의 표준화를 이뤄 종합 영양제 ‘진사나’를 개발한 후, 다양한 임상실험을 통한 효능 및 안전성을 입증하고 홍보해 한해 약 30만 달러 이상을 수출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고려인삼은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상품으로 이용됐고, 그 효능이 신비해 동양최고의 명약으로 그 가치가 크게 인정돼 1천500여 년간 교역의 중심에 서 있었다. 홍삼 제조기술 또한 고려 인종 때부터 개발돼 오늘에 이르기까지 약 1천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가공기술로 손꼽히며 고려인삼의 가치를 한층 더 높여주었다.
이제는 우리의 고려인삼도 옛날의 명성을 되찾고 세계 최고 명품으로 우뚝 서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원료의 표준화를 위한 연구 강화로 성과를 창출함이 세계화의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다. 고려인삼이 한국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한국의 문화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한 구심점에 서있음을 재삼 확인하게 된다. /김장욱 농진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인삼과 농업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