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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세월은 흘러도 변하지 않는 정

 

이순의 나이에도 피붙이 가족 빼놓고, 좋은 것 하나 고르라면 서슴없이 정겨운 친구를 고르겠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함께 뒹굴며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어릴 적 친구도 있고, 사회 초년병 시절 만난 친구, 나이가 들어가면서 정을 주고받는 친구가 있다.

나는 초등학교를 마친 뒤 고향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따라서 꼬맹이 친구들과는 우정을 쌓을 수 없었고 스물이 갓 넘어 우연히 만난 필연의 친구들이 꽤 많다.

60년대 후반 연기학원을 다녔다. 영화배우가 아닌 연극연출이나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서다. 이 때 故 하길종 감독의 처녀작 ‘화분’이라는 영화에 출연했고, 70년 초에는 당시 김동훈, 오현경, 김순철, 이낙훈, 이순재, 최불암 등 잘 알려진 연기파 배우들이 있는 실험극장이라는 극단에 들어가 기초를 다졌다. 그 후 외국인이 운영하는 디자인 회사에 입사하면서 연출의 꿈은 접었지만 그 꿈은 늘 마음속 깊이 자리잡고 있다.

어느 날 잘 가던 단골다방에서 모 예술학교 출신들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등단한 시나리오 작가와 연극배우 등을 만나 그들과 의기투합해 우정을 키워 나갔다.

그중 시나리오를 쓰던 친구는 당대 최고의 거장이라 불리던 고 유현목 감독이 제작하고, 얄개시리즈로 유명한 故 석래명 감독이 기획한 만화영화 ‘로보트 태권V’를 만들어 우리나라 만화영화 전성시대를 열었다. 이를 계기로 당시 유명한 감독들과 연결돼 촉망받는 작가로 성장했다. 그 친구 때문에 그야말로 기라성 같은 유명 감독들과 배우들을 저절로 알게 됐다.

이로 인해 나의 디자인 사무실은 저녁만 되면 영화인 집합체 구실을 했고, 아예 친목을 다지는 ‘훼이드 인’ 이란 모임을 결성했다. 그 친구는 현재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이사장이 됐고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돈독한 우정을 간직하며 틈만 나면 만나 한 잔의 술을 기울이며 그 때를 회상하곤 한다.

지난해에는 기억에서 잊혀졌던 초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무려 50년 가까이 흐른 세월 때문에 이름도 가물가물해 망각의 세월을 절실하게 느꼈다. 그러나 재회에 또 다른 만남의 연속으로 희미하던 기억이 점차 되살아나면서 새 친구들의 정을 느끼게 됐다.

동문이라는 단어로 그들과의 교류를 시작했는데 이제껏 느껴왔던 우정과는 차원이 다르다. 반 백년의 시간이 흘렀는데 묘하게 꿈틀거리며 되살아나는 코흘리개 시절의 순수의 정이 이토록 클 줄이야….

요즘 이들과 어울려 산행을 즐긴다. 산을 오르며 정을 쌓고, 배낭 속의 음식을 꺼내 함께 나누는 맛은 흐르는 정은 가족의 일원이 된 기분마저 든다. 하산 후 뒷풀이는 헤어짐의 아쉬움을 애써 잊기도 하지만 다시금 만남을 기약하기에 더없이 흥겹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기억의 저편으로 묻혀져 돌이킬 수 없는 추억의 장이 되겠지만 그래도 티 없이 깨끗하고 소중한 친구들의 정이 묻어나기에 내일도 모레도 아니 생을 다하는 날이 올지라도 그간의 정을 되새김질 하며 가슴속 깊이 간직하며 살련다. /임상호 시인

▲ (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서정문인협회 이사 ▲ 경기도 문학상 수상 ▲ 구름산 예술제 심사위원 ▲ 새마을문고 심사위원 ▲ 광명신협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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