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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신흥무관학교

‘아나키즘(anarchism)’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an archos’로 ‘권력의 부재(不在)’를 뜻한다. 근대에 와서 처음으로 국가가 없는 사회란 뜻으로 이 용어를 사용한 사람은 루이 아르망 드 라옹탕이다. 그는 1703년 인디언의 생활을 기술한 저서에서 ‘국가가 없는 사회’를 아나키즘이라고 표현했는데 그 후 아나키즘은 ‘무정부주의’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의 한 형태로 1922년 12월 박열(朴烈, 1902~1974) 등이 중심이 돼 일본에서 조직한 풍뢰회(風雷會)가 기원이다.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1867~1932)이 독립운동가로서 최종적으로 도달했던 사상적 종착지가 아나키스트였다. 아나키스트의 노선이란 독립운동 내부를 혹독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흥사단(興士團)도 예외는 아니었다. 1921년 이래로 독립운동의 대열에서 가뜩이나 이탈하고 투항하는 자들이 속출하고 있었는데 흥사단의 ‘무실역행(務實力行)론’이 그들의 행동에 구실을 주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런가 하면 공산주의에 대해서도 신랄한 공격을 퍼부었다. 그래서 공산주의자들은 아나키스트를 아주 싫어했다. 마음만 먹었다면 삼한갑족(三韓甲族)의 후손으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던 우당은 나라가 망하는 역사의 고비를 넘어가면서 이처럼 무정부주의자로 변모해 있었다.

우당 일가가 재산을 처분하고 마련한 거액의 자금을 갖고 만주로 망명길에 오른 건 1910년 12월이었다. 그리하여 정착한 곳이 서간도(西間島)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다. 이곳에서 이듬해인 1911년 이주 동포들을 위한 자치기구인 경학사(耕學社)를 조직하고, 독립군 양성을 위한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를 설립한다. 그러나 1911년 경학사가 해체되고, 1913년 통화현(通化縣)으로 이전한 신흥강습소는 학교명칭을 신흥중학으로 개칭한다. 그러다 3·1운동 이후에 많은 청년들이 만주로 들어오고 일본육사 출신의 이청천(李靑天)과 김경천(金擎天) 등이 망명해 신흥학교에 참가하면서 1919년 5월 3일 마침내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로 개교하게 된다. 신흥강습소로부터 따지면 100년의 역사다.

이처럼 우당 집안은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1850~1927) 선생은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해방되면 우당 집안의 재산은 나라에서 돌려줘야 한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한국은 우당 집안에게 빚을 졌다고…” 우당의 손자로는 국정원장을 지낸 종찬(鍾贊·75)과 민주당 국회의원인 종걸(鍾杰·54)이 있다.

/이해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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