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중략)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호올로 차단한 의상(衣裳)을 하고/흰 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설야(雪夜) - 김광균>
세상을 하얀 꿈나라로 만드는 ‘눈’은 시인들의 시심(詩心)을 홀려 무엇이든 토해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든다. 겨울문턱에 내리는 첫 눈은 시인뿐 아닌 누구라도 하얗게 들뜨게 한다. 강아지들마저 눈밭에 뒤엉켜 어지럽게 자국을 만든다.
겨울이 다가오니, 어김없이 눈 소식이 들려온다. 올 겨울도 폭설을 예고한다. 올 초에는 100년 만에 큰 눈이 내렸다. 그동안 강원도 일부지역을 제외하면 한해 겨울에 몇 번, 적설량도 한 번에 10㎝를 넘지 못했다. 눈 때문에 큰 피해를 입은 적도 없었으며 눈은 언제나 환타지를 연출하는 낭만이었다. 그러나 근년에 내리는 눈은 야누스 얼굴을 유감없이 들어내고 있다.
자동차와 여객선, 비행기가 눈을 가득 뒤집어쓰고 멈추어 섰고, 시민들이 지하철과 버스정류장에 몰려 아수라장을 이뤘다. 교통사고로 자동차들이 뒤엉켜있는 모습도 보였다. 생명을 잃거나 다친 사람들도 수없이 많다고 한다. 비닐하우스가 주저앉고 농작물이 냉해를 입어 농민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냉해와 수송의 차질로 야채값 등이 폭등해 서민들의 가계를 위협한다.
폭설과 한파는 세계 각국도 마찬가지여서 나라마다 심각한 몸살을 앓았다. 뉴스는 하얀 눈에 파묻힌 세계 여러 도시들의 모습을 보여줬다. 유럽과 인도에서는 동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겨울 기온이 15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미국 풀로리다가 영하 7~8도로, 노란 오렌지에 고드름이 매달려 있었다.
지구 온난화로 겨울에도 큰 추위가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근년에는 그 말이 무색해졌다. 이전의 겨울추위는 대개 삼한사온으로 몇 일간 추우면 다시 풀어지곤 했는데, 요즈음은 이런 해묵은 상식도 통하지 않는다.
기상이변의 원인은 화석연료 사용의 증가, 벌채, 각종 산업 활동의 확대 등으로 대기 중 온실가스가 급격히 증가되는 지구온난화 때문이라 한다. 근년의 한파도 북극지방의 온난화로 찬 공기가 극지방에만 머물지 못하고 남쪽으로 확산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온난화 때문에 기록적인 폭설과 추위가 왔다는, 무슨 뜬금없는 이야기인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기상이변이란 과학으로도 예측 할 수 없는 불가항력이다. 과학자들은 나름대로 원인을 설명하고 있으나, 가설이 많고 논리적으로 명쾌하지도 않다. 신(神)이 주관하는 자연의 섭리를 인간이 어떻게 예측할 수 있을까.
평소 폭설에 준비된 모스코바는 대란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했다. 이럴 때 ‘유비무환(有備無患)’이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라 하겠다. 올겨울에는 재앙이 아닌 낭만의 하얀 여신을 마음껏 즐겼으면 좋겠다.
/김용순 시인·수필가
▲월간 한국수필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가평문인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