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박산행에 동참했다. 야간산행은 처음이라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따라나선 여행이다. 전남 장흥의 천관산이 목적지다. 오산에서 출발해 새벽녘에 도착, 차에서 나눠주는 간식을 먹고 잠깐 휴식을 취한 뒤 천관산 일출시간에 맞춰 산행을 시작했다. 동지를 앞둔 터라 일출은 늦고 일몰이 빨라지는 시간이다.
6시에 산행을 시작했지만 아직은 캄캄해 앞을 분간할 수가 없다. 각자 준비한 헤드랜턴을 착용했지만 그리 시야가 넓은 것도 아니고 한쪽이 낭떠러지라서 매우 조심스러운 산행이었다. 오르막과 바위산인데다 바위가 젖어있고 물기가 많아 조심스러웠다. 서로가 격려하고 앞을 밝혀주며 낮에 산행할 때와는 다른 하나 된 모습이 좋았다.
캄캄한 산을 오르면서 시각장애인들의 불편함과 고통을 알 수 있었다. 평소에 얼마나 답답하고 불편할까 라는 생각은 해 보았지만 막상 어둠에 나서 보니 훨씬 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잠깐의 불편도 이렇게 피부로 느껴지는데 한평생을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위대한가 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내디뎠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땀이 이마를 타고 흘렀지만 힘들다는 것 보다는 안전한 산행을 해야한다는 마음이 더 커서인지 몸은 오히려 가벼웠고 다친 발가락도 참을 만한지 욱신거릴 뿐 그리 반항하지는 않았다. 한 시간여 오르자 먼동이 트고 동쪽의 하늘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구름이 살짝 있어 해돋이를 볼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면서 오른 산행이어서 더욱 반가웠다. 화공의 작품인 듯 구름의 조화인 듯 붉음과 거뭇한 구름사이를 비집고 해가 올라섰다. 쌉싸롬한 바람이 귓불을 잡아당기는 것도 잊고 일출에 몰입했다.
2011년의 한해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극심한 불황이었지만 올 한해도 무사할 수 있어 천관산에서 해돋이를 볼 수 있음이 무엇보다 감사했다. 욕심을 부려보자면 득보다는 실이 많았던 한해였지만 사람살이를 어떻게 손익계산서 정산하듯 할 수 있나. 그저 가족들 건강하고 주변사람들 별고 없이 옆에 있어주면 행복이 아닌가 하며 빠르게 한해를 정리해 보았다.
산행을 재촉하는 일행을 따라 나서기가 아쉬워 “야호” 하고 메아리를 불러냈다. 아니다 산을 깨웠다. 매달 실시하는 산행이 안전사고 없이 이루어졌다는 데에 대한 감사이기도 하고 앞으로도 쭉 산악회원들을 잘 보살펴 달라는 부탁의 뜻이기도 했다.
날이 밝아지니 산행이 한결 편해졌다. 간간이 몰아치는 칼바람이 얄밉기도 했지만 여기저기 솟아있는 기암괴석과 천관산의 아름다운 풍광이 상쾌한 아침을 열었다. 정상에서 올려다본 하늘과 조화로운 산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는 일행들 모두가 선남선녀 같았다.
준비해간 간식을 먹고 하산을 시작했다. 원점 산행이었지만 캄캄할 때 오른 산이라 내려오는 길이 낯설었다. 어둠 속에서 본 이정표는 맞는데 식당가의 간판이며 주변 풍경이 처음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캄캄해서 주변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밝은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장애를 가지고 사는 친구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새삼 들었다. 야간산행의 매력과 12월의 일출 오래도록 기억될 추억이다.
/시인 한인숙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2006년) ▲안견문학상 대상(시) ▲시집 <푸른 상처들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