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김은 단골 외교관들과 그의 부인들에게 장사익과 그의 노래를 열심히 소개해 한국을 좋아하는 이유 하나를 더 보탰다… 그 나라를 좋아하고 이해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외교 아니겠는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문화적 요소 가운데 하나가 노래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노래를 통해 정서를 조절 받는다.
한때 객지 생활을 할 때, 퇴근 후 무료함을 노래를 통해 위로받은 적이 있다. 우울할 땐 아바의 「맘마미아」를 들으면 처연했던 기분이 가시고, 비 오거나 눈 오는 날 최백호의 ‘굳은 비 내리는 그야말로 옛날 식 다방에 앉아~’로 시작되는 「낭만을 위하여」를 들으면 그런 대로 실감이 났다.
언제인가, 오래전이리... 기분이 엉망인 날 장사익의 찔레꽃이란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렀다.
‘하얀 꽃 찔레꽃 소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순박한 꽃 찔레꽃 달처럼 슬픈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목 놓아 울었지’
순간 가슴이 휑했다. 형용사가 주축이 된 가삿말은 찔레꽃 향기가 왜 목 놓아 울만큼 슬픈지 이해가 무리였지만 공감은 했다.
꺼먼 탁성에 고음인 목소리, 완전히 빠져 들었다.
그때까지 흰색에 대한 감정 개념은 깨끗하다 였는데 찔레꽃은 희다, 찔레꽃은 슬프다. 그래서 흰색은 슬프다. 끝내는 소복(素服)은 흴 수밖에 없다고 자리 잡았다.
그 뒤부터 은근한 팬이 됐다. CD를 모으고, 신문기사를 눈여겨보고 1949년생, 나이 46에 늦깎이로 데뷔를 했는데 그때까지 열손가락도 넘는 직업을 가졌다. 당연히 생활은 여유가 없지만 노래로 충청도 출신의 태평스러움을 유지했나보다.
사람은 얼굴 보면 대강 살아온 이력을 짐작할 수 있다. 세련과는 거리가 있지만 푸근한 이웃집 아저씨! 입성도 두루마기에 백고무신.(한때는 검정 고무신이었음) “제가 그렇게까지 유명한 사람이 되남유” 거기다 겸손이 몸에 배어 있다.
카센터(세차장) 종업원으로 일할 때 이제는 작고(作故) 했지만 앙드레 김이 단골이었다. 버터 냄새 나는 앙드레 김 말투에 토속적인 충청도 사투리, 어울리지 않는 조합(組合)이지만 인연은 오래갔다.
가수로 데뷔한 후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했다. 앙드레 김은 단골 외교관들과 그의 부인들에게 장사익과 그의 노래를 열심히 소개해 한국을 좋아하는 이유 하나를 더 보탰다.
그 나라를 좋아하고 이해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외교 아니겠는가? 그는 가객(歌客)이자 외교관이다. 노랫말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 그네들도 장사익의 노래를 들으면 눈물을 쭉쭉 흘렸다.
얼마 전 뉴욕의 중심 맨해튼 공연 때, 파란 눈의 이방인들이 하나같이 눈물을 훔쳐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영감(靈感) 때문이리라……. 그의 노래는 포도주나 위스키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막걸리 한 사발에 젓가락 장단, 그는 국민 토종이다.
최백호의 고백 “20대 가수할 땐 큰 산이 송창식이어서, 도저히 넘을 엄두가 나지 않아 옆으로 돌아갔는데 더 큰 산을 만났다. 바로 장사익이다. 아예 옆으로 돌아갈 것도 포기하고 지금부터는 빌붙어 살기로 했다.” 동도(同道)를 가는 사람으로 하기 쉬운 말이 아니다.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 그가 부르면 장사익 표가 된다.
한 해를 마감하는 이 때, 장사익이 외국인들을 초청해 돈 안 받고 노래를 선물한다는 소식을 듣고 오늘 저녁 반주(飯酒)는 장사익의 노래로 결정했다.
태아는 3개월쯤 의식이 싹트고, 5개월부터 청각이 생긴다. 요즘 태교음악이 일반적인 추세인데 임신 후 장사익 노래는 절대 멀리하시길!!! 그의 노래는 자율 신경계를 예민하게 만든다. 혹시나 태아가 그의 노래를 듣고 한 많고 설움 많은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미루면 산모는 어떻게 될까? 웃자고 하는 소리!
/김기한 객원논설위원·前 방송인 예천천문우주센터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