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김정일 사망이라는 초대형 악재가 터졌다. 대외 충격에 취약한 한국 경제는 상당 기간 ‘북한 리스크’에 시달릴 전망이다. 한반도 리스크는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주고, 그 여파가 투자와 소비 감소로 이어져 실물경제까지 악화될 수 있다.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이 전해진 19일 국내 금융시장은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환율이 급등하는 등 요동을 쳤다. 다행히 20일에는 주가가 상승세로 출발하고 환율도 하락세를 보였다.
문제는 경제에 치명적인 ‘불확실성’의 고조다. 권력을 둘러싼 북한 내부의 움직임은 현재로서는 ‘시계 제로’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등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한국 신용등급이나 펀더멘털에 대한 평가에 당장은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권력승계 과정이 우리 신용등급 평가에 중요하다고 덧붙인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20대에 불과한 김정은으로의 권력승계가 어떻게 이뤄지냐에 따라 한국경제에 미칠 영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 때와 달리 이번에는 북한의 후계 구도가 확실히 다져진 상태가 아니라는 점이 가장 우려스럽다. 김일성에서 김정일로의 권력승계는 20년 걸렸으나 김정은의 권력승계는 2009년에 시작돼 준비기간이 매우 짧다.
권력승계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단기간내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는 이유다. 후계 구도를 둘러싼 북한 내 암투나 군사적 충돌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국내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지금보다 더 높아질 수 있다. 또한 한반도의 정정불안이 계속되면 외국계 신용평가사들도 국내 시장의 위험성을 신용등급에 반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김정일 사망이 우리 경제에 장기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대처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비상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북한 리스크에 대한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점검하고, 국내외 금융시장 동향, 원자재 수급 상황, 무역 현황 등을 24시간 모니터링하고 있다. 20일에는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은행이 첫 합동비상대책회의를 열고 불안확산 차단에 전방위로 대응하기로 했다.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과 관계없는 과도한 불안심리에 금융시장이 흔들려서는 안될 것이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유럽 재정위기와 북한 리스크가 복합적으로 우리 경제에 충격을 주는 경우다. 만일 그런 사태가 일어나면 외국인 투자자의 이탈로 유동성 위기가 고조되고 실물경기 또한 회복 불능의 상태로 빠질 지 모른다. 정부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