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 설날이 지났다. 해마다 돌아오는 설이지만 일을 하면서 준비하느라 마음도 분주하고 몸도 피곤했다. 별로 준비하는 건 없다고는 하지만 모처럼 식구들이 모이니 혼자 준비하다 힘이 들면 내년에는 음식부터 줄이리라 생각해 보지만 막상 닥치면 맛있게 먹어주는 식구들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거기에 자식 기다리시는 어머님 생각을 해서라도 이것저것 준비하게 된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물가는 비싸고 늦은 시간에 가서 없는 게 많아 마땅치 않아 망설이는데 쇼핑 카트에 아이를 태우고 장을 보던 젊은 새댁이 조심스레 말을 걸어온다. 예전에는 과일 정도만 준비하면 됐는데, 지난 추석에 신랑이 시댁 식구들 앞에서 음식 솜씨가 좋다고 자랑을 하는 바람에 이번에는 갈비를 재 오라는 손윗동서의 연락을 받고 그러마 하고 대답은 했지만 부담이 된다는 말을 하면서 얼굴에는 벌써 걱정을 가득 담고 있었다.
나는 식구 숫자와 식성 그리고 준비되는 다른 음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을 하며 적절하게 준비하라고 했으나 새댁은 더 걱정이 돼 양념을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다.
역시 기본양념에 생밤을 넣으면 맛도 좋고 더 격이 있어 보인다고 했더니 정확하게 계량된 레시피를 묻는다. 그러나 내가 지금껏 해 온 습관이 그렇게 계량화된 적이 없고 무엇이나 조금, 적당히, 알맞게 등으로 표현되는 아줌마 요리였으므로 그 새댁이 기대하는 답변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우리 집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설날 아침에 떡국을 끓이면서도 만두를 몇 개를 넣느냐는 질문에도 그냥 대충이라고 대답하고, 반찬은 몇 벌씩 담아내느냐는 말에도 적당히 담으라는 말로 지나간다. 그러나 손아래 동서는 수정과에 넣는 잣 알갱이까지 숫자를 세어 넣는걸 보면서 세대 차이와 함께 또 다시 내 나이를 실감하게 된다.
요즘은 정확하게 자기 색깔을 드러내고 사는 사람들이 많지만 지나치게 상황을 고려한 나머지 감정이나 견해를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자연 남들이 하기 싫은 일이나 가기 싫은 곳에 나서야 하는 일도 생긴다. 능숙하게 호불호를 감추면서 그럴싸한 명분을 앞세워 실리를 챙기는 사람들이 내심 부러웠던 적도 있지만 막상 그런 일이 생겨도 결국은 또 적당히 넘기는 쪽이 마음이 편하다. 무슨 통계자료처럼 딱 들어맞는 것도 좋겠지만 사람이 살이 가는데 적당한 틈이 여유를 만드는 건 아닐지 모른다. 물론 적당히 라는 말이 열성을 다하지 않는다거나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좋은 의미로 쓰이는 말이 더 많다.
출퇴근 거리가 적당하다며 차를 두고 걸어 다닌다는 사람도 있고 김치가 적당히 익었으니 맛 좀 보라며 건네주는 사람도 있으니 어찌 보면 적당히 라는 말이 우리 삶의 모서리를 원만하게 해주는 완충장치 같은 구실을 한다고 보면 떡국 한 그릇 더 먹고 부리는 억지일까.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 작가 신인상 수상 ▲가평 문학상 수상 ▲가평 문협 사무국장 ▲플로리스트
/시인 정진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