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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우체국 가는 길

 

바람과 햇살의 대립이 상쾌하다. 북상하는 꽃 소식이 무색할 만큼 매콤하게 몰아치던 바람도 한풀 꺾인 듯 잠잠하다. 선거 홍보를 알리며 내 달은 현수막들도 온순해졌고 지나치는 행인들의 걸음도 가볍다. 우체국 가는 길은 즐겁다. 은행나무가 줄지어 선 도로를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면 작은 공원이 있다. 오수를 즐기려는 듯 배를 바닥에 깔고 커다란 하품을 하는 누렁이의 입에서 봄날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듯하다.

낯익은 듯 낯선 봄날의 풍경을 바람처럼 지나쳐 우체국에 들른다. 태극기가 그려져 있는 우표를 붙인 한 통의 편지를 우편함에 넣고 돌아선다. 오랜 시간 잊고 지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까, 이메일을 보낼까하고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다 긴 사연의 편지를 썼다.

예쁜 꽃 편지지에 모나미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 너무 오랜만에 쓰는 편지라 어색했지만 안부를 묻고 함께 했던 지난날들의 추억을 회상하며 하얀 여백을 채워가는 것 또한 짜릿한 즐거움이다. 말로 표현하기엔 부족했던 감정과 표현이 그늘을 빠져나온 햇살처럼 환하게 밝혀졌다. 여백의 한 켠에 펜으로 대나무 마디를 그려 넣으니 한결 보기 좋다.

꼭 편지를 써야 할 일이 생기면 컴퓨터를 이용해서 쓰고 프린트해 보내기는 했지만, 이렇게 볼펜으로 편지를 쓰고 우편번호를 찾고 우체국으로 향하는 길이 흐뭇하다. 봄의 소인이 찍힌 안부를 받고 기뻐할 친구의 모습이 떠올라 실실 웃음이 난다. 누군가를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그 추억의 흔적들을 따라가는 것이 마치 나무가 제 안의 물길을 다독여 봄볕을 끌어당기고 겨우내 어둠에 갇혔던 잎들을 꺼내놓는 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계절을 갈아입고 또 다른 계절 쪽으로 옮겨가면서 나이테를 키우는 것처럼.

요즘의 우편물은 카드명세서나 혹은 공과금 관련 우편물이거나 제품을 홍보하는 우편물이 대부분이다. 특히 젊은 층들은 우편물 자체를 귀찮아하거나 거부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온라인을 통한 정보 수집과 조금은 변형된 자기들만의 은어와 약어로 소통하고 심지어는 카페나 마주 앉은 모임장소에서도 말로 표현하기보다는 휴대폰 메시지로 의사소통을 한다고도 한다.

대화나 식사 중에도 상대방을 배려하기 보다는 휴대폰에 열중하고 집착하는 사람을 보면 현대사회가 낳은 또 다른 문화의 중독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휴대폰이 눈에 안보이면 안절부절 불안해하고 휴대폰을 옆에 둬야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사람을 보면 스마트폰의 다양성, 정보제공 등 실생활에 많은 편리함과 혜택도 있지만 너무 과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격언도 새겨봐야 할 때인 듯하다

햇살 좋은 날, 바람이 밀어주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겨본다. 남녘의 꽃소식에 분주해진 개나리를 지나쳐 도서관이 있는 언덕을 오른다. 아직은 표정이 없는 저 나무들도 이미 봄의 소인이 찍혔을 테고 잎을 꺼내놓기 위해 보이지 않는 전쟁을 시작했을 것이다. 유리문 안으로 들어선 햇살에 기대어 푸른 책장을 넘긴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2006년) ▲안견문학상 대상(시) ▲시집 <푸른 상처들의 시간>

/한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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