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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것들에 대해

 

한달동안 집집마다 1만원씩 나눠주었고 동네는 그 사람의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한달째 되던 날 그 골목을 그냥 지나치자 동네 사람들은 어째서 돈을 주지 않느냐며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나와 가까운 지인이 한 달간 사람들에게 아주 특별한 선물을 건네줬다. 평소에 사람들의 마음 변화에 관심이 많았던 지인은 그가 살고 있는 동네의 각 집에 한 달 동안 매일 1만원씩 아무런 조건 없이 나눠준 다음 그 결과를 관찰해 보기로 했다.

첫째 날은 집집마다 들러 현관에 1만원을 놓고 나왔다. 이를 보고 많은 사람들은 제정신으로 하는 행동인지 의아해 하면서도 멈칫멈칫 나와서 그 돈을 집어갔다. 그는 혹시 정신병자가 아닌가 하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둘째 날도 거의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동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의혹의 표정을 자아냈다. 셋째 날이 지나고, 넷째 날이 되자 1만원씩을 선물로 주고 가는 지인의 이야기로 온 동네가 떠들썩했다. 이런저런 신변에 대한 추측을 하면서도 신기해하기도 하고, 매일 1만원의 행복을 느끼게 해주니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두 번째 주가 됐을 때 동네 사람들은 현관 입구에까지 나와 돈을 나눠주는 그가 다가오는 것을 기다렸다. 그가 언제쯤 올 것인지 기다리게 됐고, 그 소문은 이웃마을에까지 퍼졌다. 세 번째 주가 되자, 동네 사람들은 더 이상 그가 다가와서 돈을 주는 것을 신기해하거나 고맙게 생각하지 않게 됐다. 넷째 주가 됐을 때에는 그에게 매일 1만원씩 돈을 받는 것이 마치 세 끼 밥을 먹고 세수하고 출근하는 것 같은 일상사가 돼 버렸다. 그가 사람들에게 1만원을 나눠준 지 한 달이 됐던 날, 그는 평소와는 달리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 주지 않고 그냥 그 골목을 지나갔다.

그러자 이상한 반응들이 터져 나왔다. 여기저기서 투덜거리거나 화를 내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문을 거칠게 열고 현관까지 나와 성난 목소리로 “우리 돈은 어디 있습니까? 당신에게 어떤 사정이 있는지 모르지만, 왜 오늘은 내 돈 1만원을 안 주는 겁니까?”라고 따져 묻기까지 했다. 동네 사람들에게 매일 1만원을 받는 일은 어느새 당연한 권리가 돼버렸던 것이다. 매일 공짜로 1만원을 받았던 사람들이 1만원이 주는 고마움을 못 느끼는 것처럼 우리는 공기가 있어 숨을 쉴 수 있는 것도, 물을 마실 수 있는 것도, 흙이 있어 딛고 설 수 있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어느 날 갑자기 공기와 물, 흙 등이 사라졌다고 생각해 보자. 그렇게 되면 비로소 우리를 감싸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한데, 취업 걱정에 시달리다가 직장에 처음 입사할 때는 적은 보수도, 낮은 직책도, 불편한 근무환경도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백수생활을 청산하고 일을 할 수 있다는 그 자체로 고마움을 느끼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 고마운 것들은 당연한 것이 돼버리고 불만들이 쌓이게 마련이다. 부모님만 찾던 아이도 성장하면 부모님의 사랑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거나 귀찮게 여기다가 결국 부모님이 떠난 후라야 깨닫게 되고 후회하곤 한다. 남녀 간의 사랑도 처음 그녀와 만날 때 작은 행동 하나에도 매우 큰 감동을 받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상대방의 배려는 곧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가진 것에 대해 시간이 지날수록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모든 것이 늘 그렇게 곁에 있으리라는 착각, 당연히 내가 가져야 할 권리라는 착각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태어날 때 계약서를 쓰고 태어나지 않았다. 고령화 사회에서 평균 팔십이라고 할 때, 팔십 년 동안 아무 탈 없이 심장이 뛰어 주리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생명은 우리가 대가를 지불하고 구입한 물건이 아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몸조차도 온전히 내 것이 아니다. 내가 가진, 내가 누린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작은 것 하나에도 늘 감사하는 마음이 우리의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할 것 같다. 하늘은 어제보다 푸르다. 햇볕이 따사롭다. 공기가 상쾌해지고 얼었던 물과 흙이 스르륵 스르륵 녹았다. 아름다운 꽃과 들풀을 또다시 키워 내는 고맙고 소중한 봄이 왔다.

/박병두 작가·경기경찰청 정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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