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의 독림가(篤林家)가 평생동안 일궈온 숲을 모두 사회에 기부해 훈훈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올해 83세의 손창근 옹이다. 손옹이 용인과 안성 일대의 임야 662㏊를 산림청에 남몰래 기부한 사실은 5일 언론을 통해 뒤늦게 알려졌다. 시가 1천억원대에 이르는 이 임야의 면적이 서울 남산의 2배에 이른다니 손옹의 결단에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다. 손옹은 지난달 19일 산림청에 대리인을 보내 기부 의사를 밝히면서도 정작 자신은 전혀 드러내지 않은 채 소유권 등기 이전까지 마쳤다. 이처럼 방대한 숲을 기부한 경우는 산림청 개청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손옹의 ‘얼굴 없는 기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8년 현금 1억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쾌척하면서도 기부행사는 물론이고 언론 인터뷰도 일체 하지 않았다. 그리고 2010년엔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추사 김정희의 회화작품 ‘세한도’(歲寒圖·국보 180호)를 역시 아무 조건없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했다. 하도 조용한 기부이다 보니 그 사실이 한참 지난 뒤에서야 세상에 알려진 건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러면서도 공식 석상에 얼굴 한번 내비치지 않았다니 그 순수함이 우리를 숙연케 한다. 부친의 거룩한 뜻을 십분 이해하고 선뜻 동의해준 자녀들도 부전자전으로 훌륭하긴 마찬가지다 싶다.
이번 기부는 우리에게 기부의 참뜻을 다시금 성찰하게 한다. 지난 50년 동안 잣나무와 낙엽송 등 200만여 그루의 나무를 두 손으로 직접 심고 가꿔온 임야에 남다른 애착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처럼 평생에 걸쳐 정성과 사랑을 쏟아온 산림이었기에 오히려 흔쾌히 내놓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주변에 속속 골프장이 들어서는 가운데 자신의 임야만이라도 자연림 그대로 보존하고 싶다는 소망이 컸기 때문이다. 손옹은 대리인을 통해 “어떤 조건이나 단서 없이 우거진 숲을 기부하니, 후세에 온전하게 물려줄 수 있도록 잘 관리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성장과 효율, 물질과 소유를 중심으로 맹질주해온 우리 사회는 적어도 기부문화에 관한 한 아직껏 빈곤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가진 자들일수록 움켜쥐려고만 할 뿐 도덕적 책무를 수행하려는 데 무척 인색하다는 비판을 듣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터인지라 손옹의 순수한 기부는 세상을 더욱 밝게 해준다. 가진 자는 베풀 때 스스로가 빛난다. 재물이란 똥과 같아서 밭에 뿌리면 땅을 비옥하게 해 생명을 키우지만 똥통에 그대로 쌓아두기만 하면 악취 속에 썩어가며 구더기와 똥파리만 불러들인다고 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