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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삼월에 내리는 눈

 

꽃봉오리에 눈이 내리자 꽃들이 일제히 실눈을 뜬다. 앞이 보이지 않아 자세히 보려고 한다. 봄눈 내리는 내막을 알고 싶어서일 것이다. 봄인듯 했으나 겨울이 아직 잡은 손을 놓아주지 않고 있다. 겨울의 지독한 집착인가. 서술적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김춘수의 시 ‘처용단장 1-2’는 다음과 같다.

‘삼월(三月)에도 눈이 오고 있었다./ 눈은 /라일락의 새순을 적시고/ 피어나는 산다화(山茶花)를 적시고 있었다./ 미처 벗지 못한 겨울 털옷 속의/ 일찍 눈을 뜨는 남(南)쪽 바다/ 그 날 밤 잠들기 전에 /물개의 수컷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삼월(三月)에 오는 눈은 송이가 크고, /깊은 수렁에서처럼 /피어나는 산다화(山茶花)의 /보얀 목덜미를 적시고 있었다.’

이 시에서는 ‘눈’의 중의적 표현을 읽을 수 있다. 앞부분의 눈은 설(雪)이고, 뒷부분의 눈은 안(眼)이다. 각각의 평행선을 가던 눈(雪)과 눈(眼)이 마주친다. 즉 ‘삼월(三月)에 오는 눈은 송이가 크고’인데, 표면적으로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지만 함축적으로는 산다화를 응시하는 커다란 눈 즉 관능적인 눈이다. 시각적인 상황에서 역동성이 느껴지는 육감의 외침소리를 듣게 된다. 물개 수컷 우는 소리는 고독한 표범의 전형이다. 3월에 내리는 눈이 산다화의 보얀 목덜미를 적신다는 관능적 열애를 읽을 수 있겠다.

그러나 내가 보았던 3월의 눈은 이름 없는 산모퉁이 가을낙엽더미에 내린다. 그곳 주위로 민들레가 새로운 하늘을 엿보려는 찰나인데, 흰 눈은 내려 더 이상 세상 엿보기를 허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민들레가 눈 속에 푹 파묻혀 고립되었기 때문이다.

3월에 내리는 눈은 자상함일까? 아니면 폭력일까? 민들레에게 세상은 가혹할 수도 있으니 아직 서두르지 말고 좀 더 준비를 한 다음 단계적으로 적응해가며 생명을 키워가라는 자상함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각도를 달리 해서 보면 사정없이 짓밟는 폭력이 연상된다. 앙상하니 바싹 마른 갈대숲 사이로 비집고 세상을 향해 막 실눈을 뜨려는 순간인데, 그만 3월에 내리는 눈 때문에 눈을 감고 땅 속으로 몸을 숨겨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큰 틀로 바라본다면, 그 눈은 폭력적이지만 자상함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직 시기가 이르다는 메시지이다. 어둠에서 밝음으로 이행할 때, 급격한 변화는 위험을 동반한다. 실명(失明)할 수도 있는 상황이 때문이다. 그러니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눈을 보아야 진정으로 지난 겨울이 이 땅위에서 물러난다. 겨울의 종막이다. 동시에 새로운 세계와 시대에 대한 기대이다. 마른 뿌리를 일깨우는 4월은 잔인하다고 했던 엘리엇의 시구가 연상된다. 3월에 내리는 봄눈이 왔어도 설렘보다는 지난 과거의 아스라한 검은 시간의 통로가 회상되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다. 차가운 눈처럼 지난 과거를 깨끗이 청산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흙을 움켜쥔 노란 민들레꽃이 하늬바람에 하늘거리다.

/시인 진춘석

▲1992년 시문학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평택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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