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연장을 위한 인간의 꿈이 이뤄져 간다고 한다. 요즘 TV나 신문 등을 통해 ‘100세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각종 기사와 광고가 넘쳐난다. 물론 일부 보험사의 공포마케팅으로 폄하하는 논리도 만만치 않으나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평균 수명이 크게 늘어난 것을 체감케 된다.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의 수입이 은퇴 후 늘어난 수명을 준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데 있다. 특히 베이비부머로 알려진 50대들의 은퇴는 그야말로 ‘우울한 노후(老後)’를 예고하고 있다. 사회적 격변기에 태어나 부모를 공양하고 자녀를 건사하느라 자신을 돌볼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선 50대 중반의 이른 은퇴시기가 문제다. 만55세에 은퇴하면 만60세에 수령하는 연금을 5년간 기다려야 하는데 이를 금융계에서는 ‘은퇴 크레바스(Crevasse)’라고 부른다. 산악인들을 위협하는 빙하의 깊은 균열처럼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든 상황을 의미한다. 또 연금관련 규정이 개정돼 2013년부터는 연금수급 연령이 5년마다 1살씩 늦춰져 은퇴 크레바스는 10년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쥐꼬리만 한 연금 액수와 함께 연금가입자가 적은 것도 불안감을 더한다. ‘피델라티 은퇴백서’에 따르면 베이비부머 4명중 1명은 가입연금이 전혀 없는 상황이다. 10명 가운데 4명은 국민연금을 포함해 단 1개의 연금상품에 가입, 은퇴이후 최저생활비도 안되는 58만여원을 손에 쥘 전망이다. 은퇴 크레바스를 어찌어찌 넘어선 은퇴자들도 안심하기 이르다. 은퇴 후를 대비한 자금이 늘어난 수명만큼 늘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증권회사 분석에 따르면 은퇴자금을 본인이 희망하는 수준으로 소비할 경우 75세면 모두 없어진다고 한다.
만약 100세 시대가 도래한다면 은퇴자의 대부분이 은퇴직후 10년과 마지막 생애까지 20여년을 무일푼으로 지내야 한다는 우울한 전망이다. 모두가 꿈꾸는 여행과 취미생활, 등산, 사회봉사 등으로 이어지는 평안한 노후는 어찌 보면 꿈에 그칠 공산이 크다. 물려받은 유산(遺産) 없이 평생을 가족과 직장에 충성하며 살아온 은퇴자들의 노후가 끔찍할 수 있다는 경고다.
전문가들은 본인의 노력과 함께 국가의 사회보장책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은퇴자들의 적성과 건강에 맞는 일거리를 마련해 ‘평생 월급장이’로 살게 하는 것이 완벽한 대책이라는데 의견을 모은다. 또 일찍부터 은퇴를 준비해야 한다고 충고하는데 이는 없는 살림살이를 몰라서 하는 이야기로 들린다. 새로 국회에 입성하는 300명의 선량(選良)들에게 현답(賢答)을 부탁한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