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작가 친구에서 “야, 그림 한 점만 줘봐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말은 “야, 돈 좀 줘봐라(공짜로)”하는 말과 똑같이 들린다. 예술품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니 저작권에 대한 인식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아직도 예술가를 이슬만 먹고 사는 고상한 존재로 생각한다. 예술가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1888년 빈센트 반 고흐가 프랑스 남부도시 아를(Arles)에서 생활할 때, 고흐는 한 달 생활비로 200프랑 정도를 썼다. 당시 아를의 체신공무원 조셉 룰랭이라는 사람은 한 달 월급이 135프랑(고흐의 편지)이었는데, 그는 그 돈으로 부인과 세 명의 자녀들과 살았다. 고흐는 친구 룰랭이 어렵게 생활하는 것을 안쓰러워 했지만, 공무원보다도 더 많은 돈을 생활비로 썼던 고흐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재료비는 늘 고흐의 고민이었다. 아를에서 고흐는 한 달에 대략 200프랑의 돈을 생활비와 재료비로 썼다.
아를에서 고흐가 쓰던 캔버스는 개당 4프랑이고, 물감은 개당 1.5프랑으로 고흐가 한달에 20점의 유화를 그린다면 한 달에 캔버스 비용으로 80프랑을, 그리고 한 달에 물감 값으로 30프랑을 쓰게 돼 총 재료비로 약 110프랑을 지출하게 된다. 남은 90프랑으로 식사와 숙박비를 해결하고 그가 좋아하는 담배와 생활용품을 구입해야 한다. 돈 들어갈 일이 더 있다. 담배도 사 피우고, 친구 룰랭과 술도 마시고 동생 테오에게 편지와 그림 소포를 보내야 하니까 돈은 훨씬 더 든다. 고흐에게 이런 적자 생활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밥 굶기를 밥먹듯 하던 엔트워프 시절 동생 테오에게 “그림재료와 모델료, 방세를 치른 다음 남은 돈으로 생활용품을 살 수가 있을까? 그림은 돈이 많이 드는 첩과 같다.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얼마를 들여도 끝이 없다”라고 편지를 썼다.
그래도 고흐의 후손들과 네덜란드는 고흐로 인해 지금 엄청난 돈을 벌어 들인다. 저작권 덕분이다. 1985년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한 곳에서만 팔린 고흐의 복제품이 150만달러(약 17억원)였다고 한다. 고흐의 작품은 저작권이 소멸돼 저작권 대상은 아니지만, 반 고흐미술관 등 고흐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들과 직접 전시사업을 진행하거나 질 좋은 아트상품을 만들 때는 지금도 당사자와 저작권을 협의해야 한다.
1998년은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저작권이 시행된 시기였다. 이전에는 아무런 제약 없이 저작권을 사용했는데, 1998년부터는 돈을 내고 저작권을 사용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사후 50년 동안 저작권이 보호되기 때문에 피카소, 달리, 샤갈 등 현대미술의 중요한 인물은 대부분 저작권 대상이다. 저작권이 새로운 창작을 방해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저작권은 반드시 필요하다. 저작권이 보호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짜로 그림을 달라는 것과 같고, 작가들은 본업에 충실할 수 없게 된다.
최근 가수들이 연기자로 등장하고 판타지 소설작가들이 저작권 침해 소송을 하느라 창작활동을 전혀 하지 못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작가들이 좋은 작품을 생산할 수 없다면 엄청난 사회적 손해가 될 것이다. 그 결과 어느날 갑자기 주변에서 좋은 미술이 없어진다면, 좋은 노래가 없어진다면, 좋은 만화가 없어진다면, 좋은 소설이 없어진다면 우리 삶은 어떻게 될까? 저작권 지급을 아까워한다면 언젠가 우리 주변에는 괜찮은 창작물은 없어지고 질 낮은 소비품으로 우리 주변을 덮게 될 것이다.
저작권은 미래의 성장동력과도 관계가 있다. 문화 후발국인 관계로 출판이나 예술사업에 엄청난 저작권료를 물고 있는 입장이지만 IT나 전자제품, 자동차같이 우리의 문화도 국제적 경쟁력을 찾춘다면 저작권 사업은 미래의 주요한 성장동력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한류열풍의 주역인 드라마나 영화, 음악 그리고 최근 어린이 출판물에서 그 가능성이 보이고 있다.
/박우찬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