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스페인이 맞붙은 2002년 한일월드컵 8강전. 양팀은 전후반 90분과 연장전 30분을 포함해 120분간의 혈투에도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승부차기에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은 마지막 킥커인 홍명보 선수가 골을 성공시키고 환한 웃음과 함께 달려 나와 선수단과 뒤엉켜 기쁨을 나누던 모습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 승부차기에는 또 다른 주인공, 즉 비련의 스타가 있었으니 스페인의 유망주였던 ‘호아킨 산체스’였다. 그는 당시 스페인팀의 막내이자 최고 유망주로 야심차게 첫 월드컵에 참가했으나 4강을 가리는 승부차기에서 실축, 패전의 멍에를 져야 했다. 이후 그는 별다른 활약 없이 명멸해 갔는데 월드컵 후유증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렇듯 승부차기 혹은 페널티킥은 선수생명을 좌우할 정도로 엄청난 충격을 준다. 따라서 승부차기와 페널티킥을 ‘11m의 러시안룰렛’이라거나 혹은 축구경기중 ‘가장 잔인한 승부’라고 부른다. 최근에는 세계최고무대를 호령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선수 2명이 나란히 승부차기와 페널티킥을 실패해 화제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뛰고 있는 메시는 ‘현세대 최고의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이번 시즌 63골이나 기록한 메시가 지난 25일 첼시와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서 11m앞에서 차는 페널티킥을 실수해 팀을 탈락시켰다. 메시와 함께 축구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호날두 역시 바이에른 뮌헨과의 4강 2차전 승부차기에서 골을 실패해 레알 마드리드의 탈락을 자초했다.
이런 중압감 때문에 거의 모든 축구팀은 페널티킥이나 승부차기를 전담하는 선수를 사전에 지명해 두고 있다. 선정기준은 스타성보다는 절대절명의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심장이다. 그러나 이들도 사람인지라 코앞에서 차는 듯한 11m킥을 실패하고 머리를 감싸안기도 한다. 인생에도 11m킥과 같은 순간이 있다. 자신감 있게 골대 안으로만 차넣으면 그만인데 차기에 앞서 온갖 잡념에 흔들리게 된다.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인 주제 무리뉴는 “페널티킥은 시도한 사람만이 실축도 할 수 있다. 난 차지 않았기 때문에 실축하지 않았을 뿐이다. 실패한 선수들은 모두 용감했다”며 실축한 선수들을 격려했다. 살다보면 수만 관중의 환호와 야유가 교차하는 축구장에서 홀로 11m앞에 선듯한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이럴 때 우리는 최대한 용기로 공을 차야만 한다. 터질듯한 심장소리와 가빠오는 호흡을 뒤로 하고 공을 차기위해 달려나가야 한다. 열정과 책임감으로 공을 찬 사람만이 실패를 통해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