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월 유레카 비누회사의 주인으로 재벌인 앤서니 노인은 평소 돈이면 안되는 일이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대학을 갓 졸업한 아들 리처드가 엄청난 재산의 상속자이면서도 소심해서 청혼을 하지 못하는 것에 불만이다. 리처드는 이런 아버지에게 사랑하고 있는 처녀 랜트리는 상류사회 출신으로 24시간이 스케줄로 꽉 차 있어 청혼할 시간조차 없다고 하소연한다. 아버지의 돈으로도 시간만큼은 살수 없다는 말에 이어 리처드의 숙모도 앤서니 영감에게 충고한다. “돈의 위력을 너무 믿지 마세요, 오빠. 참된 사랑에 관한 한 재산은 아무 소용도 없는 법이에요. 오빠의 전 재산으로도 아들을 행복하게 할 수 없어요”라고.
리처드는 아버지를 뒤로 하고 랜트리와의 7~8분의 짧은 만남을 위해 함께 마차에 올랐고, 이제 랜트리의 어머니가 기다리는 극장까지 데려다주면 2년간 볼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랜트리와 마차에 오른 리처드는 어머니의 유품인 반지를 찾느라 약간의 시간을 소비했는데, 이후 마차는 유례없는 교통체증에 꼼짝을 못하게 된다. 결국 마차 속에서 2시간을 함께 보낸 리처드와 랜트리는 결혼을 약속하게 된다.
‘마지막 잎새’ 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황금의 신과 사랑의 신’이라는 오헨리의 작품이다. 미국의 국민작가 오헨리는 여기서 글을 맺지 않는다. 소설 마무리에 앤서니 노인이 돈으로 교통체증을 일으켜 두 사람이 마차 속에 머물도록 했음을 밝혀 돈의 위력을 실감케 하는 무시무시한 반전을 꾀하고 있다. 결국 오헨리는 순진하게 사랑의 신을 믿고자 하는 독자의 뒤통수를 강하게 내리친다. 사랑도 만들 수 있는게 돈이라고.
하지만 필자는 이 소설에서 오헨리의 시각과 달리 돈의 사용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맘모니즘(물질만능주의)에 빠진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돈의 위력을 부인하고자 하는게 아니다. 다만 이 소설을 통해 돈은 사랑을 만들고, 세상의 행복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는 ‘돈에 관한 사용법’을 깨닫게 된다면 지나친 독선일까.
최근 우리나라에서 제일 돈이 많은 집안의 형제들이 재산을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먹을 것이 없어 오늘을 넘기면 굶어죽을 위험에 빠진 것도 아니고, 병으로 죽어가는 식구를 살리기 위한 다툼도 아니다. 자신들은 ‘공평한’ 재산분배와 삐뚤어진 과정을 ‘바로집기’ 위한 차원이라 항변할지 모른다. 하지만 국민의 입장에서는 만석지기끼리 한 석을 더 채우기 위한 집안싸움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돈은 사랑과 행복을 위해 사용될 때 가장 값어치가 있어 보인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