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臺灣)이 자유중국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1971년 중공으로 지칭되던 중국이 유엔에서 대표권을 확보하면서 자유중국은 강제탈퇴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당시 자유중국은 한국의 혈맹이었다. 임시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의 독립을 적극 지원하던 우방이었음에 분명하다.
한국과 국교가 있던 시절, 모 신문사 초청으로 타이완을 방문했던 경험이 있다. 기억하기는 그 무렵 타이완은 국제적으로 국교를 유지하고 있던 나라가 한국과 이스라엘 등 극소수에 불과했다. 관계(關係)를 중시하던 타이완인(人)들의 대접은 극진했다. 조간과 석간을 함께 발행하던 초청측은 사장이 직접 막내뻘인 기자들을 접견하고 편집국장이 시설을 함께 둘러보며 설명을 하던 기억이 새롭다. 일본제국주의에 함께 저항한 양국이 공산권이라는 공동의 적을 두고 있다는 동지의식이 곳곳에서 베어났다.
하지만 힘과 이해관계가 우선시되는 국제사회는 냉엄했다. 떠오르는 태양인 중국과의 외교수립을 위해 한국정부는 1992년 8월 24일 타이완정부와 국교를 단절했다. 서울 명동에 있던 타이완대사관의 국기게양대에서 자유중국의 상징인 청천백일기가 하강되는 장면은 TV를 통해 중계됐고 이를 보며 타이완 국민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분단국이라는 약점을 딛고 살아남아야 하는 우리 정부의 선택에 이성적으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가슴속으로는 한없이 미안했었다. 타이완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누구보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하는 심정이었음에 분명하다.
이후 한국과 타이완 정부는 민간차원의 관계를 회복하고 경제분야는 어느 나라 못지않은 가까운 사이를 유지하고 있지만 국민감정은 여전히 간극을 보이고 있다. 타이완에는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혐한류(嫌韓流)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무조건 한국을 비하하면 왜곡여부와 상관없이 신문이 팔리고, 코메디언이 한국을 폄하하면 인기가 상승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반면 한국보다 먼저 국교를 단절했던 일본에 대한 타이완 국민들의 시각은 대단히 긍정적이다. 일본은 외교단절이후 정부차원에서 관계개선을 위한 노력을 꾸준히 펼쳐왔고 그 효과는 지난 일본 동북부지진 당시 타이완 국민들의 성금이 3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국민감정에서 일본은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나 한국은 꼬투리만 잡히면 반한(反韓)감정으로 비화한다. 마침 경기관광공사(사장 황준기)가 지난 1일 김포와 타이완 송산을 잇는 항공노선 개설을 기회로 타이완 관광객 유치에 나섰다. 눈앞에 이익만 볼 것이 아니라 멀리보고 가슴으로 다가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