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8월 8일자 경기신문 사설과 23일자 조선일보에서 제가 쓴 ‘성벽이 소년에게 말을 걸어 왔다’라는 책에 대한 기사를 통해 극찬해 주신 것을 보고 가슴 벅찬 심정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다른 신문을 보니 화성시장님께서 지역의 어려운 일을 호소하기 위해 땅끝 마을에서 국회의사당까지 국토대장정을 하신다는 글을 읽고 시장님께 글을 올리게 됐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함께 대동여지도에 표시된 봉수대를 찾기로 했습니다. 조선시대 봉수로는 다섯 노선이 있었는데, 그 중 수원 화성과 연관이 있는 서해안으로 이어지는 제5봉수 길을 택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시작한 것이 대동여지도에 표기된 산맥을 찾아서 등산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고향이 화성시 우정읍이라서 수원 영통구 매탄3동인 우리 집에서 광교산을 거쳐 수리산, 칠보산, 융건능, 삼천병마골, 삼봉산, 태행산, 구장리, 발안컨트리, 어은리, 쌍봉산으로 이어지는 산맥을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저는 수원시와 화성시의 산맥을 2년에 걸쳐 1개 노선을 찾아보았습니다. 칠장산에서 서북쪽으로 연결되는 산맥을 한남정맥이라고 합니다. 이산은 안성 칠장산에서 용인 석성산으로 이어지고 다시 광교산, 백운산, 수리산으로 연결돼 다시 남쪽으로 선회해 칠보산으로 연결돼 융건능을 휘돌아 다시 서쪽으로 향하다가 화성시 봉담읍 삼천병마골에 이르러 하나는 남쪽으로 향합니다. 이는 서봉산을 거쳐 안중 원정리 2함대 사령부까지 산맥이 연결되는데 이 산맥을 한남 서봉지맥이라 합니다. 두 번째는 삼천병막골에서 서쪽으로 향하는데, 삼봉산에서 태행산을 거쳐 남양과 서신을 거쳐 서해안 바닷가에 이르는 남양지맥이 연결되며, 세 번째 산맥은 태행산에 남쪽으로 향하다가 팔탄면 구장리와 발안으로 연결돼 조암 쌍봉산으로 연결되는 쌍봉지맥으로 이어지는 세 개의 산맥으로 연결되는 산맥체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원화성지방은 산자수명한 산맥체계를 가지고 있어 조선 초기부터 융건능 지역은 조선의 3대 명당으로 불리는 산자수명한 곳이 우리가 살고 있는 수원화성 지방입니다. 저와 아버지는 2010년 2월 13일 설날 전날 칠보산 종주를 시작으로 다음날 설날에는 아버지 고향 쌍봉산을 종주하고 이후부터는 집에서 시작해서 올해 5월까지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20여회에 걸쳐서 100㎞가 넘는 구간을 대동여지도와 지도 항공사진 등을 통해서 산길을 찾았습니다. 화성시의 산길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가시덤불로 막혀있었습니다. 특히 2010년 9월 2일 불어 닥친 태풍 곤파스의 피해로 산정상의 많은 나무가 쓰러져 지금까지 산길을 걸을 수 없는 구간이 많아 산행하기가 불가능할 정도였습니다.
화성시는 지리적으로 교통요충지이라서 지방도와 국도, 고속도로, 고속철도 등이 통과하고 있어 산맥이 잘렸는데 이것은 그나마 양호한 것입니다. 화성시는 산맥을 잘라내고 택지를 조성하고 아파트를 지은 곳도 여러 곳이 있었으며, 그리고 안타까운 것은 지금도 산맥을 파괴해 아파트와 공장을 짓고 있어 제가 3차례 화성시장님께 화성시의 귀중한 산맥을 보호해 줄 것을 건의한 바 있는데, 화성시장님께서는 3차례에 걸쳐 애매한 답변만 하셨습니다. 그리고 화성시 산맥을 따라 걷다보면 동탄을 시작으로 봉담, 향남, 우정, 장안과 매송, 비봉, 남양, 송산, 서신 등으로 연결되는 화성시의 곳곳은 샌드위치 조립식 판넬 건물로 가득차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건축형태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난개발의 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하심인지 화성시의 건축물은 무분별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어 학생인 제가 보기에도 너무하다 싶더군요. 아름다운 화성시를 주민 각자의 돈벌이로 망가트려도 되는 것인지 한심하다 아니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채인석 화성시장님, 제가 왜 이렇게 장문의 글을 썼는지 아실 것입니다. 21일 동안 땅 끝에서 국회까지 국토대장정을 해 현안 해결을 호소하시러 길을 나서신다고 하셨는데, 제가 보기에 땅 끝에서 국회의사당까지 가실 것이 아니고 화성시의 4개의 산맥과 물길, 바닷길, 옛길, 봉수길 을 21일 동안 시민들과 함께 찾으면서 화성시 자원을 찾고 결의를 다진 후 국회에 입성하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싶어 글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