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으로 세상을 밀고 가는 저것!
연초록 비로드 봄비 속을
라마승처럼
달팽이 한 마리 꾸물꾸물 기어가고 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처럼
힘껏 이 세계를 떠메고 가는
달팽이 한 마리
봄 들판 비에 젖어
제 몸으로 길을 내고 있다
오! 저 빛나는 생의 오체투지
-글발 한국시인축구단 ‘공동시집
토요일이면 지구를 걷어차고 싶다’에서 발췌
달팽이 한 마리를 보는 시인의 눈은 달팽이를 아버지로 본다. 아버지의 사랑으로 본다. 이 땅의 모든 가장으로 본다. 달팽이는 온몸으로 세상에 길마저 낸다. 그 길을 따라 연초록 꽃이 오라고, 그 길을 따라 기다리던 세월이 오라고, 그 길을 따라 사랑하는 사람이 오라고, 그 길을 따라 옥빛 하늘이 흘러오라고... 짧은 시가 읽을 때마다 긴 감동 큰 여운을 끝없이 가져다준다.
이처럼 사물은 저마다 큰 의미를 가지고 존재한다. 그것을 보는 사람은 보고 보지 못하는 사람은 보지 못한다. 보는 사람은 세상을 좀 더 가치 있는 것으로 보고 보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을 삭막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방을 가만히 둘러보면 세상 한 자리를 말없이 차지해 제 몫을 다하고 있다.
주류인 것과 비주류인 것이 세상을 채워서 비로소 세상이란 거대한 바퀴가 돌아간다. 비정규직 정규직인 사람이 세상을 가꾸어가듯, 그러므로 비주류나 비정규직이나 제 몫의 일을 제 힘으로 다 하므로 이것저것 따질 필요도 없이 그들은 고귀하고 평등하다. 그러한 평등이 존재해야 꽃은 제 빛깔로 아름답고, 새는 제 목소리로 노래한다. 우리도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자. 시인이 아니라도 시인의 눈을 가지게 되고, 사소한 것마저 사랑하는 시인 보다 더 넓고 큰 가슴을 갖게 되리라. /김왕노 시인
/김지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