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이 발생해 아무런 죄도 없는 가축을 살처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불과 1~2년전의 일이다. 동네 뒷산에 구덩이를 파고 중장비를 동원해 돼지를 강제로 밀어 부치는 장면이 아직도 기억속에 생생하다. 험악한 분위기를 감지한 가축들이 구덩이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장면에서는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구제역 파동이 가져다준 충격은 컸다.
더욱 기억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은 현장에서 하얀 가운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짚어 쓰고 살처분을 주도했던 공무원, 수의사 등 축산관련 종사자들이었다. 이들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현장에 내몰렸다. 가축들이 희생되는 현장에서 상황에 따라서는 이를 주도적으로 해 나갈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살처분이 시작되자 마자 ‘정신적 외상’ 즉 트라우마(trauma)에 시달리는 환자가 속출했다. 트라우마는 일반적인 의학용어로는 ‘외상’을 뜻하나, 심리학에서는 영구적인 정신 장애를 남기는 충격을 말하는데 심할 경우 정신적인 충격 때문에 사고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 됐을 때 극도로 불안해지는 특징을 갖고 있다.
현장에서 살처분을 진두지휘 했던 관계자들은 대부분 정신적 질환에 시달린다는 보도가 이어졌었다. 당시 이들은 제대로 치료를 받았을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지난 2010년과 2011년 잇따라 발생한 구제역 파동 때 경기도내에서 구제역 살처분에 참여한 7만여명 중 심리치료를 받은 경우는 564명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통합당 박민수 의원이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살처분에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한 경기도는 약 7천명 중 0.8%인 564명에 그치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모두 12만730명이었지만 실제 치료를 받은 사람은 기껏 총 2천667명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넓은 지역에서 가장 많은 살처분이 이뤄졌던 경기도에 전담의료기관 40개소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의료기관을 보유했으면서도 정작 심리치료를 받은 사람은 100명 중 1명 꼴도 안됐다. 박 의원은 “살처분 참여자에 대해 심리치료를 적극적으로 독려하지 못한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경기지역에서 또다시 구제역이 발생하지 말란 법은 없다. 만일 구제역이 현실화 될 경우 살처분에 참여했던 요원들이 재 투입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이 살처분 현장에서 겪었던 심리적 충격이 되살아나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이들에게 치료기회를 부여해 완벽하게 정상적인 생활이 되도록 도와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