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사과 ‘후지’ 29년, 국내 참외 품종 ‘금싸라기’ 17년. 앞의 것들은 오랜 시간을 투자한 품종개발 사례다. 이처럼 하나의 씨앗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요즘 들어 필자는 종자 관련 문의나 취재 요청을 자주 받는다. 1998년 외환위기 때 미국의 다국적 기업 몬산토에 인수합병 된 중앙종묘와 흥농종묘를 최근 국내기업이 인수한 이후에 종자, 나아가 유전자원에 대한 관심도가 부쩍 높아진 데서 비롯된 것 같다.
유전자원은 40억 년 동안 진화를 거치며 축적된 생명체로써, 인류에게 실질적 또는 잠재적 가치가 있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말한다. 세계 종자산업 규모만 해도 430억 달러 내외이며, 연평균 5.2%로 빠르게 성장하는 추세다. 지금 세계 각국은 국부 창출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총성 없는 유전자원 전쟁’을 통해 유전자원 주권화와 독점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우리는 이 유전자원 전쟁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첫째, 생명자원 클러스터 구축을 통해 국가 성장 동력을 창출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농업의 부가가치를 획기적으로 높이려면 생명기술(BT)과 정보기술(IT), 나노기술(NT) 등 다양한 분야의 과학기술을 결합해 경계를 허무는 융·복합이 필수라 말한다. 따라서 농업을 의약·공업·문화산업으로까지 넓히고 IT산업 50년 이후 2030년쯤에 도래할 것으로 예견되는 ‘생물산업시대’에 우리 경제를 책임질 수 있는 산업이 될 수 있도록 투자 확대에 뜻을 모아야 한다. 농촌진흥청은 2006년 내진설계와 로봇이 종자 입·출고를 담당하는 최첨단 종자저장시설을 갖춘 농업유전자원센터를 신축해 운영하고 있다. 농업유전자원센터와 종묘회사 및 제약회사 등 전문 기업이 클러스터를 구축한다면 농업유전자원센터도 단순한 종자은행(Seed bank)의 역할을 넘어 국가 성장 동력을 창출하는 생명산업의 허브(Hub)로 자리매김할 것이며 시너지 효과 또한 극대화될 것이다.
둘째, 유전자원과 관련해 국제적 위상을 강화하는 동시에 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 2010년 10월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생물다양성협약(CBD) 당사국 총회에서 채택한 ‘유전자원의 접근 및 공평한 이익공유(ABS)에 관한 국제규범’에 따라 앞으로는 유전자원의 소유권이 있는 국가와 상품 이익을 공유하게 됐다. 이렇게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국제 규범을 인식하고 종자강국으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산·학·연의 적극적인 참여와 교류가 필요하다. 특히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자원을 다양하게 가진 저개발국과 협력체계를 확립해 국제 유전자원 확보 및 이용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농업유전자원센터는 2008년 8월 유엔 산하 국제생물다양성연구소(Bioversity International)로부터 ‘국제 유전자원 협력훈련센터’로 지정된 후 매년 유전자원분야의 공무원 또는 전문가들을 초청해 유전자원 관리기술을 익히고, 자국 실정에 맞는 관리기술을 습득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앞으로 각국 간의 긴밀한 협력체계를 형성해 국가 차원의 장기적인 투자와 지원 체계를 구축하도록 더욱 투자하고 노력해야 한다.
셋째, 유전자원의 경제적 가치 외에 새로운 사회·문화적 가치를 인식하고 유전자원과 전통지식을 연계한 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 유전자원은 거대한 로열티 시장을 형성하는 배타적·독점적 권리이자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경제적 가치를 품고 있다. 또한 이런 경제적 가치 외에도 잠재적인 사회·문화적 가치의 개발도 가능할 것이다. 교육만화의 등장인물인 ‘배추도사 무도사’, 1988년 올림픽 마스코트인 ‘호돌이’ 등에서 힌트를 얻어 우리의 풍부한 전통문화와 수려한 자연 경관을 유전자원과 결합한 문화콘텐츠를 개발한다면 수익 창출과 동시에 문화강국의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다.
미래를 대비하는 이런 노력들은 생명자원의 보고인 자연에 가치를 더하고,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며, 농업을 고부가가치 생명산업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 천연 의약 소재, 기능성 신소재, 바이오 에너지 작물 등과 같은 새로운 산업 소재로써 가치가 높은 유전자원의 확보 및 보존과 더불어 활용기술을 보다 적극적으로 개발한다면 이 ‘총성 없는 유전자원 전쟁’에서 살서 살아남아 국가 경제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