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제주도편을 펴낸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남도편에서 신석정 시인을 소개한 바 있다.
‘호남정맥 줄기에서 떨어져 나와 바다를 향해 내달리다 우뚝 멈춰 선 변산, 그 산과 맞닿은 고요한 서해, 전나무 숲길이 깊은 그늘을 만드는 단정한 내소사, 울금바위를 병풍 삼아 아늑하게 들어앉은 개암사, 켜켜이 쌓인 해식 단애가 신비로운 풍경을 연출하는 격포 채석강, 드넓은 곰소염전과 소박하고 평화로운 갯마을의 서정…. 지금도 부안의 자연은 이토록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곳엔 아름다운 자연이 낳은 시인, 신석정(1907~1974)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경기시인협회는 얼마 전 전북 부안 신석정문학관을 다녀왔다. 경기시인협회는 1995년 임병호 시인을 비롯한 홍신선 시인, 김우영 시인 등으로 출발해 오늘에 이르렀다.
이번 문학기행은 국제 PEN 한국본부 경기지역위원회 임원진을 포함한 경기시인협회 회원들이 함께 참여한 가을 문학기행이었다. 자연과 역사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신석정 시인은, 일제 강점기를 살아온 민족시인이었다. 경기시인협회는 신석정 시인의 삶을 돌아보고 부안의 문화답사지 서외리 당간, 동문안 당산, 서문안 당산, 남문안 당산, 돌모산 당산, 간재사당, 반계서당, 내소사 등과 함께 신석정문학관을 찾았다.
신석정 선생은 1907년 전북 부안 부안읍 동증리 출생으로 1924년 <조선일보>에 첫 작품 ‘기우는 해’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흔히 신석정 시인을 일제 강점기에 참여시가 아닌 목가적이고 서정적인 시를 쓴 시인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편견이다.
중앙불교전문강원 석전 박한영 스님 문하에서 불전을 연구하기도 하였으며, 시문학 제3호에 ‘선물’을 발표, 시문학 후기 동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첫 시집 ‘촛불’을 간행한 것을 시작으로 ‘슬픈 목가’, ‘빙하’ 등의 시집들을 간행하였고, ‘매창시집’, ‘산의 서곡’, ‘대바람 소리’, 유고수필집으로 ‘난초 잎에 어둠이 내리면’과 유고시집 ‘내 노래하고 싶은 것은’ 등의 시집도 간행했다. 또한 2009년 4월에 ‘신석정 전집’을 국학자료원에서 출간한 바 있다.
신석정 시인의 문학세계는 한마디로 ‘지재고산유수(志在高山流水)’라 할 수 있다. 이 말은 선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던 것으로, ‘저 의연한 산과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에 마음을 배우자’라는 뜻이다.
신석정 시인은 이병기,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 김기림, 정지용, 박용철 시인과 활동했는데, 당시 상당수의 시인들이 친일문학을 한 데 반해 민족의 아픔과 한을 시를 통해 승화해 냈으므로 민족시인으로서 문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신석정문학관에는 현실인식과 참여의식이 반영된 미발표 시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학창시설의 에피소드와 시인으로 입문하게 된 선생의 일생이 부안의 자연경관과 함께 영상으로 마련되어 많은 시인들의 감성을 사로잡기도 했다.
고택 청구원은 1934년에 들어선 초가 3칸의 집이다. ‘촛불’, ‘슬픈 목가’ 등의 시집에 수록된 시들을 집필한 곳으로 1952년까지 거주하였던 집필실이었다. 현 청구원 건물은 1997년 전라북도에서 복원, 기념물 제84호로 지정했다고 한다.
경기시인협회 회원들은 신석정 시인의 삶과 문학세계를 떠올리며,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와 ‘임께서 부르시면’, ‘아직은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슬픈 구도, 가슴에 지는 낙화소리’ 등을 낭송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그의 시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를 소개해 보려 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깊은 삼림대를 끼고 돌면/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멀리 노루 새끼 마음 놓고 뛰어 다니는/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중략)”
신석정 시인과 함께한 그날, 깊어가는 가을서정과 함께 내소사 단풍잎들이 참 곱고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