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기 말부터 불어 닥친 신자유주의의 광풍은 그동안 인류가 신봉했던 자본주의가 얼마나 불안한 체제였던지 한꺼번에 노출했다. 세계 경제가 곤두박질쳤다. 역대 우리 정부들은 서서히 그 불안한 시스템에 끌려들어가면서 야만의 세계 속으로 편입해 들어갔다. 신자유주의의 이념을 마치 종교처럼 신봉했던 이명박 정부의 5년 동안 대한민국은 마치 경쟁과 적자생존의 정글을 방불케 했다. 소득격차와 양극화가 심화되고 약자들의 생존권은 보호되지 못했다. 재벌기업들의 무분별한 사업영역의 확장은 영세상인들의 생존권을 위협했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수년째 계속되는 노동자들의 죽음은 방치되었다. 세계 1위라는 자살율의 기록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각박하고 피폐한 사회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늦었지만 다행인 것은 정글 같은 세상 한편에서나마 협동사회를 향한 움직임들이 서서히 포착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경제의 우울한 그늘 속에서 위력을 발휘했던 유럽의 협동조합들이 언론을 통해 우리 사회의 관심권에 들어왔고, 마침내 지난 12월에는 협동조합법이 발효되었다. 사회적기업에 대한 관심도 크게 성장했다.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계속되면서 양적, 질적으로도 크게 성장해 가고 있다. 시행 3년차에 이른 마을기업들도 꾸준히 앉은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
이른바 사회적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등의 영역이 아직은 협소하고 미미하지만 우리사회의 관심권에 들어온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사회적 경제의 근간은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논리로 무장한 사회를 협동하는 사회로 바꾸자는 데 있다. 따듯한 자본주의,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실천해 보자는 것이다. 사회적기업이 추구하는 목표는 맹목적인 이윤추구보다 사회문제에 관심을 두고 해결해 가는 데 있는 만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정책과 지원방식도 좀 더 세심하고 세련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지원방식은 양적 성장과 일자리를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추는 비교적 단순한 방식이었다. 이제부터는 사회적 경제의 근간이 지역사회에 착근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지역사회 안에서 일터와 삶터가 공존하는 구조로 전환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지방자치단체들의 지역경제 정책은 매우 아쉽다. 대부분 지자체들의 경제정책이라는 게 일방적으로 중소기업에 일변도이고, 사회적 경제의 그림을 독자적으로 수행하기보다는 중앙정부의 업무를 대행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경제의 밑그림을 그리고 그 지역과 형편에 맞는 기업들을 육성하는 등의 적극성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