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그대 지금/타국을 떠돌며 삶의 무게를 느끼고 있지만/생각해보면/나라가 없었던 시대/바다 건너 강 건너 산 건너 남의 땅//칭얼대는 아이와 식솔들 이끌고 보따리 짊어지고/만주벌판과 연해주, 오사카를 떠돌던 전생도 있었네//그대들 바리바리 짐 싸들고 배 위에 올라 바라보던 산천/점점 더 멀어지고/소주 한 병 마시고 뱃전에서 피우는 담배/연기로 흩어지는 회한//그래, 생각해 보면/우리 보따리 인생 아닌 적 있었겠는가?…(후략)” 인용한 시는 경기도 평택항 소무역연합회 사무실에 걸려 있는 시다. 이 단체는 쉽게 말해서 평택항을 이용해 한·중 간에 소무역 활동을 하는 ‘보따리상’, 일명 ‘다이궁(代公 帶工)’들의 연합체다.
‘다이궁’은 중국어로 ‘물건을 대리 전달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보따리상들은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면세품, 농산물 등을 소규모로 거래한다. 우리나라의 공산품들을 중국에 보내고, 중국의 농산품을 국내로 들여온다. 금액만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로서는 이익이다. 원단, 전자제품 부속품, 화장품, 커피, 과자, 사탕 등 농산물보다 훨씬 값나가는 것들이다. 이들이 휴대하고 들어올 수 있는 세관 한도는 술 1병, 담배 1보루, 농산품 50㎏(한 품목당 5㎏씩 10품목 가능)이다. 일반 여행객 1명이 해외여행 시 들여올 수 있는 한도와 같다.
이들은 한 달 소득이 최저 생계비에도 한참 못 미치는 50만원 수준이다. 하지만 배를 떠나지 못한다. 떠나는 순간 노숙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이다. 연령대도 높다. 50~70대가 대부분이다. 수입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매식의 여력이 없다.
중국 측 수집상에서 주는 도시락으로 선상에서 식사를 한다. 반찬은 김치나 장아찌 같은 게 전부다. 그런데 지난 2일 중국 르짜오항(日照港)에서 평택항으로 오던 배안에서 도시락으로 식사를 하던 71세의 할머니 보따리상 1명이 숨지고 4명이 긴급 이송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이 일이 일어나자 평택항 보따리상들은 자신의 일처럼 슬퍼하고 있다. 먹을 것도 못 먹고 ‘밀수꾼 집단’이라는 눈초리를 받으며 고생만하다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사실 이들의 마음 한쪽에는 ‘개미 수출군단’이라는 자부심도 있다. 따라서 정부나 국민들이 자신들을 어엿한 직업인으로 인정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실제로 IMF 때엔 정부에서 보따리무역 강좌까지 개설하면서 장려하기도 했던 직업이다. 언제까지 이들을 이렇게 방치할 셈인가? 이제 정부에서도 한·중무역의 최전방에 있는 이들에 대한 인식을 바꿀 때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