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초중고교가 예비 소집일을 정해 학생들에게 새해 교과서를 배부중이다.
예전에는 교과서를 받으면 해질세라 묵은 달력으로 책을 감쌌다. 그리고 하얀 표지에 ‘국어’ 등의 제목을 공들여 적어 넣었다. 처음에는 이식받은 장기처럼 생경해도 시간이 지나면 나만의 손때로 친근해졌다. 새 교과서를 받으면 왠지 모르게 기분도 뿌듯했던 기억이 새롭다.
글자가 보급된 후 후세들을 선도하기 위한 교과서는 늘 있어왔다. 한자(漢字)권에 속했던 조선시대까지는 대학, 논어, 맹자, 중용, 예기, 춘추, 주역 등이 교과서 역할을 했고, 과거시험도 거기서 출제됐다. 그러나 근대적 의미의 ‘교과서’라는 명칭이 처음 쓰인 때는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다. 근대적 교육자료가 전무하다시피 했던 당시, 정부가 직접 ‘국정교과서’를 편찬해 보급했다. 지금껏 애창되는 국민동요 ‘얼룩송아지’는 1948년 처음으로 국정 음악교과서에 수록됐다.
‘교과서’의 사전적 정의는 “학교에서 교과 과정에 따라 주된 교재로 사용하기 위해 편찬한 책”이라고 한다. 학습용으로 학생과 교사가 함께 공부하는 교본이라는 딱딱한 표현이다.
하지만 우리사회에서 교과서란 의미는 더욱 광의(廣義)적이고 깊은 속뜻을 갖는다. 우리에게 ‘교과서’란 선악을 구별하는 기준이자 추구해야 할 이상(理想)이고 따라야 할 규범집이다. “교과서에 나온다”는 말은 곧 불변의 진리를 가리키며, 교과서적인 삶은 반듯한 모범인생을 뜻한다.
그런 교과서가 요즘 천대받고 있다. 각종 보조교재인 참고서에 밀려 교과서가 보조교재로 전락한 지 오래다. 능력 있다고 소문난 학원 강사들이 수억원의 연봉을 챙기는 데서 나아가 직접 참고서를 만들어 파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험문제를 족집게처럼 맞춘다는 유명 강사의 참고서는 베스트셀러로 출판사가 찍어내기 바쁘다. “교과서 위주로 예습과 복습을 충실히 했어요”라는 입시고득점자의 인터뷰를 믿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없다.
교과서는 다양해졌고 입시를 위해서는 오히려 EBS교재나 각종 참고서를 보는 게 효과적이다. 교과서만 봐서는 성공하기 힘든 세상이다.
그래서인지 교과서대로 살기는 더욱 힘들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