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베정권의 노골적인 엔저(低) 정책 여파가 심상치 않다. 엔화 가치는 지난주 도쿄 외환시장에서 2년7개월 만에 달러당 90엔 선으로 떨어졌다. 윤전기를 돌려서라도 엔화를 찍어내겠다는 무제한 금융완화와 공공투자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을 앞세운 ‘아베노믹스’가 시장에서 먹혀들고 있는 결과다. 아베 총리가 자민당 총재로 선출됐던 작년 9월 26일 달러당 77.71엔이던 엔화 가치는 불과 4개월 만에 15% 넘게 급락했다. 일본 재개 일각에서마저 “과도한 엔저는 일본경제에 오히려 독이 된다”는 견제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덕분에 침체의 늪에 빠져있던 일본경기도 오랜만에 활력을 찾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아베정권의 과도한 엔저 유도에 대한 비판과 견제도 잇따르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다른 나라의 경제를 희생시키고 자국의 경기회복을 도모하는 아베정권의 근린궁핍화(beggar-thy-neighbor)정책을 비판하고 나섰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도 일본의 공격적인 통화정책 비난에 가세했다. 미국 자동차업계는 아베정권이 이웃나라 거지만들기 정책을 노골화하고 있다면서 상응하는 보복을 일본에 경고하라고 오바마 행정부에 요구했다.
미국과 유럽의 금융완화에 이어 일본까지 작심하고 무제한 금융완화로 선회함에 따라 세계 환율전쟁 촉발을 우려하는 경보음도 나오고 있다. 알렉세이 을유카예프 러시아 중앙은행 수석부총재는 일본의 통화절하 유도 정책을 다른 나라들도 뒤따를 가능성이 있다면서 세계가 새로운 통화전쟁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선진국 간 통화마찰로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 신흥국들은 신흥국들대로 자구책 마련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엔화 약세가 오래 지속될 경우 직접적인 피해자는 한국 기업들이다. 특히 수출기업들로서는 최근의 원화절상에 엔저까지 겹쳐 우려됐던 수익성 악화가 현실화되는 등 타격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한때 100엔당 1천500원을 기록했던 원·엔 환율은 지난 11일 2년 반 만에 1천170원대로 주저앉았다. 수출 기업들은 벌써부터 원·달러 환율 하락과 엔저로 수익성이 10% 넘게 떨어졌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소식이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기업들도 오랫동안 누려왔던 고환율 수혜의 단꿈에서 깨어날 때가 됐다. 한국 수출기업들은 그동안 일본기업들과는 반대로 고환율 덕택에 손쉽게 장사를 해온 것도 사실이다. 일본기업들이 엔화환율이 2000년 달러당 110엔에서 75엔까지 떨어지는 어려운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울였던 자구 노력과 그 생존 지혜를 배워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