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마당 한켠, 고고한 자태로 꽃을 피우고 있는 수선화 몇 포기. 그 낯빛이 너무 고와 엎드려 낮은 자세로 몇 번이고 그 향기를 취해 보았다. 하얗게 쌓인 눈을 살짝 피하여 양지쪽에 살포시 피어난 꽃이라니, 완당 김정희 선생님은 이런 수선화의 매력 때문에 제주도로 유배 왔을 때도 이렇게 수선화를 가까이하며 소박하게 외로움을 달래셨나보다.
1년 만에 찾은 제주도의 김정희 적거지(유배지)에서 나는 김정희 선생님을 비롯한 옛 분들의 남다른 감성을 만날 수 있었다. 완당의 기념관 안에는 유배지에서 벗들과 가족 그리고 문우들과 나눈 편지글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평소에 차를 즐기셔서 정약용 선생님, 초의선사와 차를 마시며 조선의 차 문화에 대한 자료들을 많이 남기기도 하셨다니. 하얀 수염을 드리운 모습으로 은은한 차향과 더불어 평소에 특별히 아끼시던 수선화 그림을 직접 그려 넣은 편지지에 정감어린 마음이 담긴 편지글을 쓰시는 모습,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푸근해졌다.
그렇게 우리의 조상들은 서정적인 삶을 사셨던 것 같다. 자연과 벗하며 자연 속에서 마음을 나누는 삶과 차를 벗하고 글을 쓰면서 자신과의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삶을 다독여 갔을 것이다. 삶이 팍팍하고 녹록치 않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자주 그런 옛 정서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물론 옛 선비들의 고고한 정서는 못되겠지만 나름대로의 낭만이 담긴 편지글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마음을 위로하고 몇 초 만에 확인되는 메시지가 아닌 편지가 오기를 기다리며 마음 졸이던 설렘과 천천히 흘러가던 그 여유로움이 새삼 그리운 것이다.
요즘엔 손 편지를 쓰는 것이 마치 시대에 뒤떨어진 나이든 사람들이나 하는 표현방식이라 생각하여 구닥다리로 치부되기도 한다. 문자 몇 자, 그것도 줄여 이모티콘, 한 사람 한 사람 고집하지 않고 단체로 해결되는 SNS 등. 직접 편지를 쓰는 것은 숱한 첨단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구시대의 유물처럼 변해버린 것이다. 그렇게 세상도 시대에 따라 유행처럼 얼굴이 변해가고 진화해 가고 있는 것이다. 직접 쓰는 편지문화를 기억하는 나는 시대처럼 찾아온 정보화, 첨단의 문화들로 인하여 가슴 풋풋하게 하던 그 편지글의 정겨움과 여유로움을 잃어버린 것 같아 가슴 한쪽이 허전하고 아쉬운 건 어찌할 수가 없다.
김정희 선생님의 세한도를 스마트폰 사진으로 찍어 지인들에게 G-메일로 쪽지 글과 함께 보내고 선생님의 편지글 내용을 스마트폰 메모판에 저장해 넣으며 돌아오는 길에 조금 전에 담아두었던 수선화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열어보았다. 편리한 기계문명의 맛에 푹 빠져있는 나의 모습에서 자꾸 온기 없는 사이보그의 낯빛이 점철되는 건 어찌할 수가 없다.
하지만 조금씩이라도 잡아두고 싶다. 흑백의 색깔로 미미하게나마 남아있는 내 안의 소박한 산수화 같은 정서를. 오늘은 꼭 각별한 친구, 사랑하는 그에게 문자도 전화 목소리도 아닌 수선화 한 송이 그려 넣은 편지지에 잔잔한 마음이 담긴 그런 편지를 써보고 싶다. 그 편지가 따뜻한 온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런 마음의 난로가 되기를 바라면서.
▲에세이 문예 등단 ▲평택 문협 회원 ▲한국에세이작가연대 회원 ▲독서토론논술 문화원 원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