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8 (화)

  • 구름많음동두천 27.7℃
  • 흐림강릉 29.4℃
  • 구름조금서울 29.1℃
  • 구름조금대전 30.2℃
  • 맑음대구 32.3℃
  • 연무울산 29.4℃
  • 맑음광주 31.6℃
  • 구름조금부산 26.6℃
  • 구름조금고창 32.1℃
  • 맑음제주 29.6℃
  • 흐림강화 26.9℃
  • 구름많음보은 28.2℃
  • 구름조금금산 30.3℃
  • 구름많음강진군 30.8℃
  • 구름조금경주시 32.9℃
  • 구름조금거제 28.1℃
기상청 제공

 

이맘쯤이면 유난히 고향이 생각난다. 온 동네에 하얗게 눈이 쌓이고 물 고인 논에서 얼음을 지치던 유년의 시절이 사뭇 그립다. 설빔으로 사 주신 양말을 신고 썰매를 타다가 물웅덩이에 빠지면 신발과 양말을 말리겠다고 모닥불을 피우곤 했다. 축축이 젖은 짚과 콩꼬투리를 모아 불을 피워놓고 꽁꽁 언 손발을 녹이다 보면 양말에 구멍이 뚫리기 일쑤다. 구멍 난 양말을 어찌하지 못해 끙끙대다가 결국엔 혼쭐이 나곤했다.

수수깡을 반으로 쪼개어 신발 밑에 동여 매고 동네 언덕배기에서 스키를 타기도 하고, 그것도 시원찮으면 비료포대를 깔고 앉아 눈썰매를 타는 일이 얼마나 재미있던지 하루해를 훌쩍 넘기곤 했다.

달이 떠오를 쯤이면 이웃집 아저씨가 마실을 왔고 막걸리 심부름은 우리들 차지였다. 명절에는 누룩을 띄워 뒷방 아랫목에 막걸리를 담가 두었지만 그 술이 떨어지면 심부름은 늘 나와 동생의 몫이었다.

왕복 한 시간은 족히 넘는 거리를 주전자를 들고 다녀와야 했다. 가는 길엔 저수지가 있고 높은 산이 있었다. 산에서 퍼런 불빛이 언뜻언뜻 보이면 호랑이나 늑대가 마을로 내려오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고, 한 겨울 저수지가 쩡쩡 울면 여름에 빠져죽은 영혼이 우는 소리인 줄 알았기 때문에 오금이 저리도록 무서웠다.

저수지에 사람이 떠오르면 둑방에 꺼내 가마니로 덮어놓고 가족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런 날이면 등하굣길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남의 과수원으로 지나다니다 야단을 맞기도 했다. 밤길을 걷다보면 그런 상상들이 머릿속을 꽉 채워서 엄동설한에도 추운 줄도 모르고 손에 진땀이 났다.

그렇게 우리는 겨울을 보내곤 했다. 마당 여기저기 구멍을 뚫어 구슬놀이를 했고, 딸만 내리 낳다 뒤늦게 얻은 아들을 위해 딱지를 접어야했고, 동생이 구슬을 잃으면 그 구슬을 다시 찾아와야 했으며, 혹여라도 남동생이 맞고 오는 날이면 남동생을 앞세워 동생을 때린 녀석을 기필코 울려야만 속이 후련했다. 오빠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이렇게 천방지축으로 성장을 했고, 사춘기가 되면서 도시에서 온 사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과수원집 아들인데 대학에 떨어져 삼수생이었다. 덜덜거리는 경운기에 사료와 음식찌꺼기를 실어 날랐고 가끔은 여자를 달고 와 며칠씩 머물다 가기도 했다. 눈이 마주치면 가끔씩 웃어주는 모습이 얼마나 멋지던지 경운기소리가 나면 창문 너머로 몰래 훔쳐보았고 숨이 막힐 듯 가슴이 덜컹거렸다.

정월 보름이면 쥐불놀이를 하고, 집집마다 음식을 얻으러 다니고,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쇠는 줄 알고 밤을 꼬박새우며 한 살씩을 더 먹었다. 생각해 보면 아름답고 건강한 유년이었다.

지금은 8차선 도로가 생기면서 동네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서너 가구만 남아 고향을 지키고 있다. 그 분들도 팔십을 훌쩍 넘겼으니 머잖아 없어질 고향이다. 선산이 있어 1년에 한두 번 찾아가면 잊었던 고향의 이야기들을 옛날이야기 삼아 말씀해주신다.

세월이 흐를수록 고향이 그립고 유년의 기억이 새롭다. 생각만 해도 설레고 아련해지는 곳이 고향이다. 마을을 지키던 당산나무는 없어지고 잘 포장된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길이 한때 내 성장의 터전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