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춥고 눈도 많이 내려 올 겨울은 참 힘들게 건너간다. 그러나 혹독하던 동장군의 위세도 입춘을 지나 우수를 바라보면서 서서히 힘이 빠지는 느낌이다. 바람은 어느새 태도를 바꾸어 살그머니 뺨을 간질인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주어진 시간이 있다. 그러자니 사람의 삶도 자연 그 흐름에 걸음을 맞춘다. 그러나 생명체에게만 국한되었다고 할 수 있으랴? 계절도 때가 되면 물러가야 하고 유행도 때가 지나면 시들해진다.
어느덧 우리 고장도 눈에 띄게 고령화 되고 있다. 대부분 사는 형편이 비슷해 아침에 설거지 끝내기 무섭게 마을 회관으로 모인다.
그곳에서 치매에 좋다는 십원 내기 민화투로 시간을 때우다 점심 식사를 하고 이집 저집 얘기를 하다 어느 날은 저녁까지 같이 먹고 캄캄해서 집으로 가는 일상이다.
빈 집에 혼자 앉아 늦은 저녁 전화기조차 침묵이고 떡국의 농간으로 아픈 곳만 늘어간다. 남들 보기 민망해 자식들이 서로 모시겠다고 하지만 수족 있는 동안은 서로 편하게 살고 싶다는 말을 앞세워도 가슴으로 드는 바람은 옷으로 꼭꼭 여민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분이 선대부터 살던 집에 혼자 사시다 몸도 불편하시고 힘들어 하셔서 집을 정리해 그 돈을 가지고 아들네 집으로 들어가셨다. 평생을 살아오신 고향과 집을 떠나시며 눈물바람이라 모두들 서운한 마음으로 헤어졌다. 예전 같으면 다들 잘 됐다고 할 일을 세상이 변해 이제는 걱정부터 한다. 그 돈 쥐고 있다 정 힘들면 요양원으로 가시지 나중에 빈손으로 쫓겨나게 생겼다고 혀를 찼다.
국민소득은 성장하고 복지정책도 날로 변하는데 세상은 왜 이렇게 가족끼리도 서로를 경계하며 살아야 하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옛날이 지금보다 잘살지 못해서였는지 모르지만 배가 아프면 할머니 손이 약손이었고 운동회 날 맡아 놓고 꼴찌를 해도 할아버지 등에서는 언제나 일등이었다.
세상살이에 바쁘고 먹고 사는 일이 녹록치 않다고 하더라도 빚은 갚고 저축은 해야 하지 않을까? 만약에 빚과 저축 중에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면 아무리 힘이 들어도 빚을 먼저 갚아야 한다는 사람과 앞날을 위해 저축부터 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다.
여기서 빚이라 함은 부모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고, 저축은 자녀양육을 뜻한다. 자녀를 물질로 양육하기보다 부모의 바른 품성과 행실로 길러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기야 요즘엔 어려운 형편에 노부모를 봉양하는 일은 바보짓이라는 말도 나온다. 자식들이 버젓이 있어도 조그만 셋방이나 얻어 혼자 살면 독거노인으로 등록이 되어 여러 가지 지원과 혜택이 주어지는 실정이라 불효를 장려하는 그릇된 복지 정책 앞에 삼세동락은 쇠귀에 경 읽기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말도 이미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마당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 작가 신인상 수상 ▲가평 문학상 수상 ▲가평문인협회 이사 ▲플로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