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訃告) 혹은 궂긴소식 등으로 소개되는 종이신문 부고란은 유서 깊다. 한 인간의 생이 마감됐음을 알리는 부고는 과거와 달리 망자(亡者)를 중심으로 가족들의 직업이 소개돼 읽는 이들의 이해를 돕는다.
그런데 부고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강의 인생사가 읽힌다. 특히 의외의 가족관계를 발견하거나 특정한 대물림현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예를 들면 혈연 중심의 유교적 활동으로 유명한 저명인사의 부고에서 사위나 며느리가 의외로 외국인임을 확인하면, “자녀들의 결혼과정이 순탄치 않았겠구나” 하는 혼자만의 추측이 가능하다.
기업을 일군 창업자의 부고에는 가족경영의 뼈대가 노정되는 경우도 많다. 망자인 창업자의 직업은 ‘회장’, 큰아들은 ‘사장’, 작은 아들은 ‘부사장’이다. 또 다른 기업인의 부고에는 A라는 모기업의 대표는 큰아들, 방계회사인 AA, AAA 등의 회사는 아들들이 대표로 소개되고, 심지어 며느리까지 감사라는 직함을 가져 기업의 대물림을 알게 한다. 이 경우 “이들 기업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승진에 대한 꿈은 접어야하겠구나” 하는 오지랖 넓은 걱정이 든다.
직업의 대물림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전직 교장선생님의 부음에는 아들과 딸, 그리고 사위까지 모두 선생님인 경우가 많고, 목사님의 경우도 가족 대부분이 ‘○○교회 시무’거나 신학대학 교수로 표시돼 가족분위기를 짐작케 한다.
직업의 대물림에서 나아가 계층의 대물림현상도 뚜렷하다. 판·검사로 승승장구하다 세상을 등진 망자의 경우 아들·사위 등이 또한 판·검사이거나 변호사다. 많은 경우 의사나 고위 공무원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어 유명 기업인의 사위가 정치인 혹은 판·검사여서 재력과 권력 간의 가족연대도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반면, 과거 배고픈 직업이나 비인기직종의 외길을 걸은 장인 등의 부고는 허전하다. 후손들 역시 번듯한 직업이 없는 경우도 있어 안타깝다. 특히 부고란 옆에 상자기사로 처리되는 독립유공자의 경우 후손들의 빈곤함에 우리 역사의 질곡을 다시금 곱씹게 된다. 희망을 주는 부고도 가끔은 접할 수 있다. 소위 힘 있는 자리에 있던 유명인사의 마지막 직업이 소외계층을 보듬는 명칭으로 소개되는 경우 등이다. 짧은 몇 줄의 기사에 인생사가 담긴 듯하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