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그제(17일)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어렵사리 타결 지으면서 국가정보원 직원의 댓글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 실시 등 몇 가지 굵직한 ‘부속 합의’를 만들어냈다. 꽉 막힌 정부조직법 협상의 숨통을 트기 위해 ‘정치적 삽관’이 필요했을 것으로 여겨지나,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일에만 급급한 ‘졸속 합의’는 아니었는지 은근히 걱정된다. 합의사항들이 정치적 상황과 이해관계에 따라 달리 해석될 여지를 남겨 놓은 데다, 실행에 옮길 경우 정치적 반발과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가장 눈에 띄는 합의는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제기된 국정원 여직원의 댓글 의혹과 관련해 국회 국정조사를 실시하자는 내용이다. 국정조사의 실시 시기는 검찰 수사가 완료된 직후라고 못 박았다. 아직도 경찰 수사단계에 있는 이 사건이 과연 언제쯤 검찰로 넘어가 수사가 끝날지도 모르는 채 선언적 규정만 담은 셈이 됐다. 게다가 검찰수사 직후 국정조사를 하겠다는 합의는 검찰을 대놓고 ‘허수아비’로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검찰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다고 해도, 입법기관의 구성원들이 사법기관의 중추를 무력화하는 내용의 합의를 도출한 것은 삼권분립의 정신에 비추어 지나친 처사로 보인다.
전임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과 관련해 감사원의 감사결과 발표를 보고, 조사가 미흡할 경우 국정조사를 실시하기로 한 합의사항도 논란을 잉태하고 있다. 감사원 조사결과가 충분한지 아니면 미흡한지에 대한 판단을 누가, 어떻게 하느냐를 놓고 여야가 대립할 가능성을 열어놓은 어설픈 합의다. 또한 비례대표 부정경선과 관련해 통합진보당 이석기, 김재연 의원 자격심사안을 3월 임시국회에서 발의해 윤리특위에서 심사토록 한 것도 수면 아래 잠복해 온 이념논쟁을 재점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사려 깊지 못한 합의로 보인다.
오는 6월까지 인사청문회법을 개정하겠다는 합의도 문제다. 올해 안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추가적인 청문회 수요는 없을 전망이다. 그렇다면 좀 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선진제도와 우리나라의 정치현실을 합리적으로 접목한 제도개선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땜질식 처방’을 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 아닐지 모르나, 앞으로 국회와 정부가 바뀌어도 계속 적용될 수 있는 ‘청문회법 3.0’을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여야가 만들어낸 ‘정치적 합의’는 이처럼 허점투성이다.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끌어낸 합의는 또 다른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여야는 이번 합의가 휴지조각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합의사항 이행을 위해 적어도 신의성실의 원칙이라도 지켰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