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조국의 자주독립을 되찾기 위해 온 겨레가 분연히 일어났던 3·1 독립만세운동을 계기로 그동안 국내와 해외 각지에서 독립운동을 이끌던 민족지도자들이 속속 중국 상하이로 모여들어 새로운 나라를 세우자는 논의를 본격화한다.
같은 해 4월 상하이에서 드디어 국가를 세우고 정부를 만들었다. 비록 빼앗긴 나라로 인해 우리 국토 안에서 세우지는 못했지만 나라 밖에서 새 나라를 세운 것이다. 먼저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정치체제는 군주제를 떠나 ‘민주공화제’를 채택했으며 대한민국의 헌법을 제정하고 대통령중심제의 정부를 만들었다.
초대 내각에 참여한 분들의 면면을 보면 대통령은 이승만, 국무총리는 이동휘, 내무총장은 안창호, 경무국장은 김구 등이었고, 오늘날 국회에 해당하는 임시의정원 의장은 이동녕이 맡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수립된 이후 부침을 거듭하면서도 독립운동의 구심체 역할을 수행했다. 만주의 독립군투쟁을 지휘했고 국내의 비밀결사활동을 지원했다.
또 한인애국단을 결성해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세계적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특히 윤 의사의 의거는 그때까지 주저하던 중국 국민당정부의 임시정부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기폭제가 됐다. 외교와 군사적 노력도 병행됐다.
미국 워싱턴에 구미위원부를 설치해 대미외교를 강화하고, 장개석 정부와 긴밀한 협력관계 구축에 주력했다.
이 결과로 2차 세계대전이 마무리돼 가던 1943년 11월 미·영·중 연합국 수뇌들이 참석한 카이로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약속받았다.
한편 임시정부는 중국의 전시수도인 중경에서 1940년 9월 한국광복군을 창설하고,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하던 중 광복을 맞게 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비록 자력으로 국권을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일제에 빼앗겼던 나라를 다시 세워 우리 역사를 단절로부터 벗어나 이어 발전시키는 업적을 남겼다. 이에 1948년 8월 15일 정식으로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는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 헌법 전문에 명시한 것이다.
오는 4월 13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94주년이 되는 날이다. 대한민국의 뿌리인 임시정부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애국지사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에 삼가 경의를 표하는 날이다.
선조들의 유구한 넋이 지하 깊숙이 흐르고 있는 우리 한반도에서가 아닌, 머나먼 타국의 차가운 땅 위에서 나라의 수립을 엄포하던 애국지사들, 비록 타국의 땅은 차가웠지만 그들의 가슴속에는 뜨거운 애국의 피가 붉게 흘렀을 것이다.
그로부터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여전히 우리 대지 아래 깊숙한 곳에는 선조들의 뜨거운 마음이 어려 있다.
그러나 그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은 일신의 안녕에만 머물러 너무도 이기적으로 식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다가오는 임시정부수립 기념일을 기해서 떠올려본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공화정부로 1945년 11월 중경에서 환국할 때까지 27년여 동안 국내외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되었으며, 앞서 말했듯이 현행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렇듯 자주독립정신에 따라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었기에 현재 우리나라가 그 법통과 정통성을 이어받아, 자랑스러운 민주국가로서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일익을 맡을 수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3·1절이나 4·19혁명 같은 기념일은 기억하지만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일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임시정부수립 요원들이 이루어낸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었기에 현재의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다가오는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우리의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잠시나마 가져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