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부터 몸이 붙은 ‘샴쌍둥이’는 한쪽이 죽으면 함께 죽는다. 가뜩이나 사망률이 높은데, 상호 불화는 죽음에 이르는 첩경이다.
하지만 ‘샴쌍둥이’이라는 이름을 탄생시킨 태국의 ‘창’과 ‘엥’ 형제는 사이가 좋았다. 이들은 1811년 태어나 1874년 사망했으니 60년 이상을 24시간 붙어살면서 각각 10명과 12명의 아이를 낳았다. 그야말로 ‘운명공동체’다.
그동안 개인주의자들은 공동체의식보다는 개인주의가 세상을 발전시켜 왔다고 믿었다. 개인의 최선을 끌어내기 위해 국가의 간섭조차 최소화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들의 신념은 20세기 ‘신자유주의’로 이어져 세계를 뒤덮었다. 그리곤 끝을 모르는 탐욕과 부패, 타락을 최고의 가치로 숭앙하더니 세계를 거덜 냈다.
대한민국 사회에도 신자유주의의 파고는 거셌다. 서구적 가치가 뒤늦게 부러워한 우리 특유의 인간적 유대감과 공동체를 고사시켰다. 이기심으로 중무장한 소수가 다수의 밥그릇을 빼앗고, ‘경쟁’이라는 미명아래 모든 것을 차지했다. 자기들만의 이너서클을 귀족화하고, 오르는 사다리마저 치워버려 계층을 고착화했다. 입으로는 부정하지만, 선택의 모든 잣대는 욕망과 돈이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도덕과 양심은 나약한 패배주의로 치부됐다.
늦었지만 세계 지성들이 통렬한 자기반성 속에 새로운 대안을 모색 중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교수 등이 대표적이다. 이제는 ‘옳음이 좋음보다 우선한다’는 공동체의식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어렵게 공리주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좋음’만을 추구하는 세상의 피폐함을 무섭게 겪어왔으니 당연하다.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이나 복지정책의 근간은 공동체의식의 복원이다. 이를 위해서는 능률, 효과, 경쟁 등의 단어보다는 도덕, 정의, 공생 등이 앞서야 한다. 무엇보다 과거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눈물, 그리고 연대의식이 절실하다.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간다는 동질성에 대한 자각만이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기에 그렇다.
2013년,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샴쌍둥이’일 가능성이 높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