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에서는 아버지 직업을 조사했다.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면 소위 ‘가정환경조사’라는 비교육적 설문으로 학생들의 살림살이를 공개 조사했다. 세월이 흘러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시시꼴꼴한 내용까지 상세히 물었다.
그 가운데 압권은 아버지 직업을 묻는 항목이었다.
한 학급의 학생 수가 70명 전후였는데, 선생님이 “아버지 직업이 공무원인 사람?” 하고 질문하면 몇 아이들이 손을 드는 방식이었다. 직업의 종류를 하나씩 열거해 가는 선생님의 질문이 끝났음에도 손을 들지 못하는 아이들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픈 심정이었다.
초등학교 4~5학년쯤으로 기억한다. 학년 초가 되자 여지없이 ‘가정환경조사’가 실시됐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내 짝은 선생님이 “아버지 직업이 운전수인 사람?” 하고 묻자 손을 들었다.
현재 운수업에 종사하시는 분들께는 죄송한 표현이지만, 당시에는 ‘운전기사’라는 표현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여튼 새 학년이 얼마간 지난 후 짝네 집에 놀러갔다. 그런데 집은 잘 지어진 양옥이고, 집에는 희귀했던 냉장고가 버티고 있었다. 운전수가 이렇게 잘 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또 얼마쯤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다. 짝네 아버지의 직업이 운전수는 운전수인데, ‘비행기를 모는 운전수’라는 사실을 알았다. 얼굴도 가물가물한 짝에게서 “우리 아빠가 직업을 운전수라고 대답하랬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짝은 입는 것도 평범했고, 학교에 가져오는 도시락이나 용돈도 우리네와 별다르지 않았다.
지금도 비행기 조종사의 연봉은 대한민국 직업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지만, 그때도 상류층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그때는 어려서 몰랐지만 이제 생각하면 파일럿이었던 짝네 아버지는 절제된 의식이 대단한 분이었던 듯하다.
요즘도 아파트 주변 초등학교는 아파트 가격에 따라 혹은 평수별로 아이들 놀이집단이 나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심지어 사원아파트는 아버지 직급에 따라 아이들의 계급화가 도드라진다니 개탄스럽다. 그래서인지 아파트 가격은 떨어지고, 작은 평수가 대세지만 아이들 때문에 큰 평수를 고집하는 경우도 있단다.
절제된 시민의식이 감동을 준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