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하나가 실종된 느낌이다. 분명 달력의 날짜는 매일 매일을 채워 가는데 태양의 날짜는 급하기만 하다. 4월까지만 해도 봄이라기보다는 겨울의 연장선에 있는 것처럼 쌀쌀하던 날씨가 5월에 접어들면서 기온이 급상승한다.
세상이 빠름을 재촉하다 보니 태양도 순위 경쟁에 나서고 있음인가. 요즘 세상을 보면 속도전을 치르고 있는 것 같다. 생후 12개월도 되기 전부터 아이들은 단체생활로 내몰린다. 물론 맞벌이를 하다 보니 보육시설을 찾기도 하지만 아이가 혼자 있으면 함께 어울리는 법이 떨어지고 사회성이 늦어진다는 부모의 조급함이 아이를 시설로 보내는 경우도 많다. 태어나자마자 경쟁의 시작이다.
이 아이들이 유치원을 거쳐 학교에 입학하면 이때부터 본격적인 전쟁이다. 학교 주변 학원의 외벽에는 상위권 학생의 학교와 학년 이름이 빼곡히 걸려있고 대부분의 성적이 99점이거나 100점이다. 학생의 인성보다는 성적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셈이다.
부모는 성적 높여준다는 학원을 찾게 마련이고 학원에 등록을 할 때도 학원 자체의 평가를 통해서 아이의 성적이 학원에서 정한 기준에 모자라면 등록 자체를 거부한다. 공부 못하는 학생이 들어오면 학원 이미지도 나빠질 뿐 아니라 학부모들의 반발도 크다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도 이젠 옛말이다. 부모의 능력과 열성이 자식을 만든다. 1학년 때 이미 2학년 과정의 영어와 수학을 마치는 선행학습을 하고 조기교육 열풍으로 아직 모국어도 익숙하지 못한 아이들을 외국으로 보내면서 기러기 아빠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물론 넓은 세상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면 좋겠지만 세상이 그리 만만치는 않다. 가깝게 지내는 이웃이 디자인 하는 딸을 외국에 보내면서 많은 고통을 겪는 것을 보았다. 어렵게 유학자금을 마련하여 미국으로 보냈는데 딸은 계속하여 학비를 요구하고 불경기에 장사가 어려워지자 건물을 팔고 심지어는 집까지 전세로 옮기면서 공부를 마쳤다.
우여곡절 끝에 디자인 회사에 취직을 했음에도 본인의 앞가림을 못해 부모가 야식집을 하면서 뒷바라지 하는 것을 볼 때 어느 것이 참교육이며 가족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일까 고민하게 된다.
내 자식만큼은 부족함 없이 최고로 키우겠다는 열망과 욕심이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겠지만 주입식 지식보다는 사람됨이 우선인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친구를 보면 먼저 손 내밀고 도움을 줄줄 아는 사람, 영어 문장 하나, 수학 공식 하나를 외우는 일에 급급하기보다는 고통 받는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고 보듬어 줄줄 아는 사람을 사회가 키웠으면 좋겠다.
모두가 빠름을 외친다. 하지만 그 빠름의 끝이 어디일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보자. 서두르다 보면 허점이 생기게 마련이다. 자식을 키움에 있어 오로지 공부와 좋은 직장이라는 하나의 목표에만 충실하다보면 좋은 직장인이 될 수는 있겠지만 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 냄새나는 사람, 주변에 사람이 모여드는 사람, 하여 세상이 살맛나고 사회가 살맛나는 그런 세상을 살아갈 줄 아는 지혜를 주는 것이 진정한 참교육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안견문학상 대상 ▲시집-푸른 상처들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