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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IN]청년세대 응원이 필요하다

 

며칠 전 한 지인이 성년의 날(5월 셋째 주 월요일)을 맞아 올해 법적 성인이 된 아들에게 성인이 되는 것의 의미와 성인된 것을 축하하는 글과 함께 콘돔을 선물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성인으로서의 자유를 인정함과 동시에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라는 의미에서 그리했다고 한다. 자식에게 콘돔을 선물하는 아버지를 보며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과 더불어, 성인기로 진입하는 청년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동안 민법상 성년 기준은 만 20세였으나, 올해 7월부터는 그 기준이 만 19세로 낮춰진다. 법적 성인이 되면 투표권을 갖고, 음주, 흡연, 19금 영화 관람이 가능하고, 개인신용카드 가입도 할 수 있고, 물론 결혼도 할 수 있다.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는 성인기, 그러나 우리사회 청년들은 과연 얼마나 성인으로서의 자유와 책임을 만끽하며, 자신의 삶과 미래를 희망적으로 일구어 나가고 있는가?

한국 역사에서 청년이라는 용어는 1900년 전후로 잡지·신문 등의 근대적 인쇄 매체를 통해 등장하다가 점차 사회의 광범위한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청년의 출현 과정을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조명한 한 학자는 청년을 “흩어져 가는 균열의 경계선에서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는 장본인”으로 묘사한 바 있다.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가치와 문화를 추구하는 근대적 인간으로서의 청년은 1990년대 말까지 거의 한 세기 동안 일종의 문화적 기호로 지칭되었다. 1920년대 일제 강점기 하의 ‘문학청년’, 1970년대 통기타, 블루진, 생맥주로 각인된 청춘과 젊은 우상으로서의 청년, 그리고 1990년대의 신세대 이미지 등이 그 일례이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청년담론은 이전과 사뭇 다른 경향을 보인다. 바로 ‘생활인’으로서의 청년이다. 2000년대를 지나며 청년기에 붙여진 별명은 88만원 세대, 대오족(대학교 5학년), 이태백(20대의 태반은 백수), 패러싱글족(부모에게 붙어사는 싱글족), 토폐인(토익 폐인) 등이 주를 이룬다. 과거 청년의 이미지와 비교하면 참으로 가혹한 별명이다.

꿈을 먹고 사는 젊은이라는 문화적 상징성을 상실하고 무한경쟁의 사회에서 생존해야 하는 현실적 인간으로 그려지는 청년세대.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직을 하고 싶다고 절규하는 취약 계층으로 전락한 청년세대를 우리는 이렇게 내버려둬도 되는 것인가.

청년세대가 현실적 생활인으로 그려진다고 해서 그 자체를 비관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이는 청년세대가 실재성을 가지는 사회의 멤버로 인식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하고 싶으나 자신이 원하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일자리를 찾았다 해도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살아야 하는 것이 청년 생활인의 모습이라면 이러한 청년세대를 지속적으로 양산해 내는 사회에는 희망이 없다.

이른바 청년실업의 문제다. 청년실업 문제는 일차적으로 1990년대 외환위기 이후 고용 없는 성장이 낳은 산물이다. 상대적으로 괜찮은 일자리를 창출하던 대기업, 제조업, 수출기업은 노동절약적 기술 진보 및 고용 유연화 정책으로 고용 창출이 감소하였고, 상대적으로 노동절약적 기술 진보가 느린 소기업, 서비스업, 내수기업에서 고용을 흡수해 왔는데, 이들 부문의 생산성 개선이 미흡하여 고용의 질적 저하가 심화되어 왔다.

괜찮은 일자리의 감소와 고용의 질 저하는 고학력과 각종 자격증 취득으로 스펙을 쌓은 후 높은 고용 기대를 가지고 있는 청년들의 취업 진입을 망설이게 하고, 더 좋은 직장을 찾기 위한 취업 준비 기간을 연장시키면서 취업 경쟁을 과열시키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청년층이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일자리 미스매치의 문제는 개인의 눈높이 조정으로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다.

다양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부, 경제 전문가, 기업이 모든 노력과 방법을 강구해야 함은 두말 할 여지가 없다. 또한, 청년들을 언제나 대체 가능한 ‘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미래를 맡길만한 존재들임을 상기시키고, 불안한 시대를 이겨내라는 진정한 응원이 필요하다.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인생은 살만하다고, 자신의 경험을 당당히 전수해 주는 어른이 얼마나 될까. 성년의 날 주간을 보내며, 어른인 나 자신에게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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