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새벽 들녘에 모내기할 무논을 써리는 트랙터 소리가 요란하다.
농가월령가 4월령에도 ‘맹하(孟夏)가 되니 입하(立夏), 소만(小滿)의 절기로다’. -중략- ‘무논을 써을이고 이른 모 내어 보세’라고 하였다. 자연절기(節氣)는 어김없이 순환하며, 인간은 자연에 기대어 삶을 영위한다.
산업화와 더불어 도시로 나간 사람들이 이제는 풍광(風光)이 좋은 자연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근래에는 베이비부머들의 은퇴로 전원생활을 원하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났다. 이는 자연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회귀(回歸)본능 때문이 아닐까? ‘장자크 루소’는 자연 상태의 인간 삶이 가장 이상적이고 평등한 삶이라 하며 자연으로 돌아가라 하였다. 우리 선인들도 낙향하여서나, 유배지에서조차 전원생활의 여유를 즐기며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나 또한 전원을 꿈꾸다, 수도권의 한적한 농촌에 작은 집을 지어 자리 잡았다.
소담한 들꽃들이 산책길을 반기며, 무논의 개구리 울음은 전원의 평화로움을 전한다. 탐스런 꽃들이 피어나고 신선한 야채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진정한 힐링을 느끼게 된다. 초록 들을 스쳐 느티나무 가지 사이로 부는 바람은 뜨거운 여름을 식혀주고 금빛들에는 메뚜기들이 뛰논다. 마실 나온 고라니가 뜰 안을 기웃거리기도, 야생오리가 아장거리는 새끼들을 거느리고 찾아오기도 한다. 창밖으로 들녘이 시원한, 서재에서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로 전원의 한일(閑日)을 보낸다.
전원의 일상들이 낭만뿐만은 아니다. 겨우내 얼었던 대지가 풀리면 집수리, 칠하기, 텃밭 가꾸기, 잔디 깎기, 풀 뽑기 등등, 안팎으로 지속적인 관리를 해야 한다. 비가 많이 와도, 바람이 세게 불어도, 눈이 많이 내려도 걱정이다. 진입로의 눈은 제때 치워야 자동차가 드나들 수 있으며, 목조지붕이 쌓인 눈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지 걱정한다. 밤이면 칠흑 같아 아내가 무서워하여, 외출하여 친구들과 어울려서도 서둘러 돌아와야 한다. 개(犬)와 집 때문에 마음 놓고 여행할 수도 없다. 추위를 견디며 난방비를 아껴도, 아파트의 몇 배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부부 중 혼자가 되었을 때, 어느 쪽이든 혼자 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집 관리뿐 아니라 타지에서 들어와 실질적인 이웃도 없기 때문이다.
수려한 풍광은 전원생활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부지 선정부터 터파기, 집짓기 등 고려하여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시장, 병원, 약국, 공중목욕탕 등등의 생활시설들이 멀지 않은 곳에 있어야 한다. 인가(人家)가 없는 외딴 곳도, 이웃집과 너무 붙어 있어도 좋지 않다. 대중교통도 많이 불편하지 않아야 한다. 은퇴 후이지만 모임 등 외출하여야 할 일들이 많다. 중심 도시와 너무 멀면 모임에 참석하기도 힘들 뿐더러 참석하여도 먼저 일어나야 하는 등 부담스럽다. 주말주택을 마련할 때도 생활 근거지와 너무 멀지 않아야한다. 처음에는 좀 멀어도 매주 가게 되지만, 차가 막혀 시간도 오래 걸리고 기름값도 부담스러워 차츰 잘 가지 않게 된다. 전원생활이나 주말주택도 이것저것 따져 봐야 할 조건들이 많아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월간 ‘한국수필’ 등단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가평지부장 역임 ▲저서: 수필집 ‘남쪽포구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