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에 ‘애광원’이라는 중증장애우 요양시설이 있습니다. 1952년 한국전쟁 고아들을 돌보는 데서 시작해서 지금은 중증장애우의 요양과 직업훈련을 하는 기관입니다. ‘애광원’을 세우고 지금까지 중증장애우들의 어머니로 활동하고 계시는 김임순 원장님은 그 헌신을 인정받아 1989년 막사이사이상을, 2007년에는 제6회 유관순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이 ‘애광원’ 안에 독일인과 관련된 두 채의 집이 있습니다. 하나는 ‘애빈의 집’입니다.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교목을 역임한 애빈 쿠루제 목사님이 세운 집입니다. 1980년대 한국으로 휴가를 왔다가 우연히 알게 된 ‘애광원’을 위해 그는 자신의 사재를 털어 유리 온실집을 지었고, 이 집에서 중증장애우들이 직업재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장애우만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위해서도 크게 공헌한 공로로 그는 독일 정부가 수여하는 십자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애빈의 집’에 들어가면 아직도 그의 털털한 웃음과 유머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이었고, 한국을 독일보다 더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옆에 있는 또 다른 집은 ‘민들레 집’입니다. 1986년에 중증장애우 요양시설로 만들었는데, 이 집에서 젊은 독일 여성이 1년 간 중증장애우와 생활했습니다. 그녀가 처음 만난 아이는 자폐증과 장애가 겹쳐 길에 버려진 두 살 나이의 소녀였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자신을 열지 않고, 심지어는 먹는 것도 거부하는 아이였습니다. 강제로 음식을 먹이지 않고 아이의 입 주변을 조심스럽게 마사지하면서 오랜 시간의 인내와 접촉을 통해 마침내 음식을 먹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1년을 함께 지낸 그 아이는 자기 생일에 케이크가 있는 곳까지 힘들게 기어가 겨우 촛불을 껐습니다. 젊은 독일 여선생의 눈만이 아니라 그 모습을 함께 지켜보면서 환호하던 아이들과 교사들의 눈시울이 빨개졌습니다. 이 과정을 슬라이드 사진에 담아 독일에서 보고할 때 참석한 모든 독일인들을 감동시킨 기억이 새롭습니다.
한국인도 힘들어 하고 싫어하는 일을 한 젊은 독일 여성이 마치 자신의 아기처럼 돌보는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민들레 집’의 기록이라는 작은 책자에서 그녀는 한국인이 마치 민들레 같다고 말했습니다. 질긴 생명력, 고난과 고통 속에서 오히려 빛나는 삶을 살아온 한국인들이 민들레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애광원’을 통해 만난 이 두 독일인을 기억할 때마다 저는 ‘그대가 꽃이라면’(장장식 시, 이안삼 곡)을 흥얼거립니다:
“그대가 꽃이라면, 민들레, 하얀 민들레 / 수많은 별들이 떨어져 피었다는 민들레 / 하늘에서 왔으니 앉을 곳을 가렸겠나 / 돌밭이라도 길가라도 애써 가렸겠나 // 별 같은 마음으로 지친 땅에 꿈을 주고 / 험한 세상 솜털에 실어가는 그대는 민들레 / 하늘에서 왔으니 그대는 민들레 // 그대가 꽃이라면, 민들레, 하얀 민들레 / 수많은 별들이 떨어져 피었다는 민들레 / 낮은 자리 피었으니 화려함을 드러낼까 / 돌틈 사이 담장가에서 힘주어 고개들까 // 별 같은 마음으로 거친 땅에 사랑을 주고 / 험한 세상 솜털에 실어가는 그대는 민들레 / 하늘에서 왔으니 그대는 민들레”
하늘에서 왔으나 땅을 탓하지 않고, 빛나는 별들이지만 어둠을 거스르지 않는 민들레. 어디에서나 억척스럽게 생명의 뿌리를 내리지만, 솜털처럼 자신을 가볍게 여기는 민들레. 삶의 무게와 시름일랑 바람에 실어 보내면서 스스로 낮은 곳을 찾아가는 민들레.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에 화려함을 뽐내는 수많은 꽃들 사이에서 수줍은 듯 돌 틈 사이에 숨어있는 민들레. 한 아름 가득 품에 안겨드리고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역사의 발길에 채어 상처받고 흩어진 디아스포라 한국인과 외국인 노동자들, 국경을 넘어 인간에 대한 사랑 오직 하나의 신념으로 세계의 가장 낮은 곳에서 자신을 바친 사람들, 차별의 장벽을 온 몸으로 넘어선 이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고통 받는 이들에게, 여왕의 계절이라는 이 5월에, 낮은 땅에 떨어진 별, 민들레를 한 아름 안겨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