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컴퍼니, 서류 형태로만 존재하는 회사다. 버진 아일랜드는 이런 페이퍼컴퍼니가 세계에서 제일 많은 곳이다. 정확한 수치도 없다. 수만개가 존재할 것이라는 추산뿐이다. 우리나라 돈 200만원이면 법인을 만들 수 있고, 만들어진 회사는 세금이 면제된다.
물론 이 회사들은 명목상 유령 회사다. 그러나 그 안을 살펴보면 정당치 못한 검은 돈, 떳떳하지 못한 거래내역들로 넘쳐난다. 돈세탁은 기본이고, 본국의 세금 징수에 대해 합법적 조세 회피 또는 불법적 탈세도 난무한다. 그런데도 금융거래에 있어서 익명성이 보장된다. 버진 아일랜드가 세계 최고의 조세 회피처(Tax Haven)인 이유다.
버진 아일랜드는 중앙아메리카 동쪽에 있는 서인도제도에 위치한 섬 무리다. 인구 10만9천여명, 80개의 작은 섬들로 이뤄져 있으며 영국령과 미국령으로 나뉜다. 조세피난처가 몰려있는 곳은 주로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로, 동부의 36개 섬지역이다.
이곳은 루이스 스티븐슨이 1883년 발표한 소설 ‘보물섬’의 배경 중 한 곳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설에서처럼 당시 해적과 약탈자들의 은신처였던 이곳이 최근 들어서 현대판 보물섬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고 비아냥댄다. 해적 대신 세계 각지의 부자들이 조세회피를 목적으로 몰려와 돈을 묻어두고 있는 것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지난 3월 조세피난처의 실상을 폭로한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밝힌 버진 아이랜드의 VIP들만 보아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루지아 이바니슈빌리 총리, 러시아의 이고리 슈발로프 부총리의 부인 올가 슈발로프, 탁신 전 태국 총리 부인 포자만 나폼팻, 필리핀 이멜다 마르코스, 몽골국회 부의장 바야르척트 상가자브 등등.
여기에 우리나라 사람들도 자랑스럽게(?) 이름을 올려놓았다. 이번에 드러난 사람만 이수영 경총회장 부부를 비롯 245명이라고 한다. 그들이 왜 이곳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는지 지금으로선 밝혀진 게 없다. 하지만 유추해보면 뻔한 일이다. 버진 아일랜드가 어떤 곳인가. 세계적인 조세피난처 아닌가. 검고 구린 돈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면 구태여 그곳까지 갈 이유가 없다.
그래서 지금 국민들은 조사권을 쥔 세무당국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