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엄마 아빠와 함께 화성돌기를 하기로 한 날이다. 3학년이 되면서 나는 사회 시간에 화성에 대해서 배웠지만 한 번도 제대로 화성에 가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전날 밤에도 들뜬 마음에 잠이 겨우 들었는데 바람이 불어서 추울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다행히 화성행궁에 도착하니 바람은 그치고, 조금씩 화창해졌다. 날씨가 우릴 도운 것 같다. 아니면 정조대왕님이 도왔을까?
화성행궁 마당 앞에는 여러 가지 민속놀이를 체험할 수 있었다. 아빠와 나는 내 얼굴보다 큰 대왕 제기도 차고, 화살 같은 것을 던지는 투호놀이도 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힘을 빼고 던진 것이 들어갔는데 일부러 넣으려 하니 하나도 안 들어가서 답답했다. 자꾸 하다 보니 준비운동을 하는 것처럼 몸이 풀렸다. 아빠는 옛날 생각이 난다고 하시면서 굴렁쇠를 굴리셨다. 방송에서 출발소리가 나고 사람들이 일제히 출발했다. 우리 가족도 기념사진을 찍고 물 한 병씩 받아서 첫 번째 목적지인 서장대를 향해 오르기 시작하였다. 한 참 걸어가는데 어떤 아저씨가 엄마한테 “신발 끈이 풀렸어요”라고 말해주셔서 엄마는 깜짝 놀랐다. 아빠가 그러시는데 그 분이 수원시장님이시라고 한다. 시장님도 화성돌기에 참가하셨나보다. 책에서만 나오는 시장님을 만나니까 신기하고 좋았다. 아빠도 영광이라고 하셨다. 엄마가 신발 끈을 다시 묶고 한참을 올라가니까 꼭대기에 서장대가 나타났다.
미션 종이에 서장대를 쓰고 설명을 읽었다. 서장대는 서쪽에서 장군이 지휘를 했던 곳이라고 했다. 서장대에서 내려다보니 수원이 거의 다 보였다. 그래서 장군들이 여기서 지휘를 한 것 같다. 성벽을 따라서 걸어 내려오니 중간에 튀어나온 부분들이 있어서 사진을 찍고 설명을 읽어 보았다. 그것은 치라고 하는 것이었다. 꿩 치라는 한자를 쓰는데 꿩이 자기 몸을 잘 숨기고 밖을 잘 내다보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치 위에 높이 세워진 각루가 있었는데 우스꽝스러운 호랑이 모습이 방패 같은 것에 그려져 있었다. 호랑이는 적들이 보고 무서워하라고 그렸을 텐데 역효과가 날 것 같다며 우리는 웃었다. 계속해서 길을 걸었더니 다른 색깔의 깃발이 나타났다. 동서남북에 있는 깃발색이 다 다른 것 같았다. 네 가지 방향의 수호신을 상징하는 걸까 궁금했는데 엄마가 오방색인 것 같다고 했다.
두 번째 미션은 장안문이었다. 나는 장안문을 잘 몰랐는데 사실은 형들이 웅성거려서 알 수 있었다. 다음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했다. 커다란 잔디밭에 활 쏘는 사람이 보였는데, 그곳에 세 번째 미션이 있었다. 세 번째 미션은 수원화성의 동문인데 창룡문이라고 했다. 창룡문은 6·25전쟁 때 훼손됐다가 다시 복원된 것이라고 한다. 한참을 지나서 둥그런 봉화가 보여서 마지막 미션의 정답이 봉화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설명을 읽어보니 성벽 위에 쌓은 것이라서 봉돈이라고 한다고 했다. 봉돈까지 적으니 너무 뿌듯했다.
화성돌기를 마치고 엄마가 주신 <알기 쉬는 화성 이야기>라는 책으로 자료를 더 찾아보았다. 수원의 화성은 효심이 깊은 정조대왕이 지은 건물인데 화성행궁에서는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그 안에는 마네킹으로 그 장면이 나타나 있었다. 또, 화성시에 있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에 13번이나 찾아왔다고 한다. 화성돌기를 할 때는 장군이 지휘를 하고 전쟁에 대비하는 성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숨은 이야기가 있었다. 특히 송충이를 깨문 정조대왕 이야기는 진짜 징그럽지만 인상 깊었다. 화성은 크고 웅장하기도 하지만 정조대왕의 효심이 깃들어 있어 더 멋진 것 같다.
엄마 아빠와 함께 화성돌기를 하고 나니 내가 살고 있는 수원이 아주 대단한 것 같다. 숨은 전설도 있고, 지금도 성이 그대로 있는 것이 신기하다. 보통 나무를 썼으면 벌써 썩었을 텐데… 회색 벽돌도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성벽에 있는 벽돌이 엄청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인 것 같다. 회색 벽돌할아버지가 무엇이나 물어보면 대답해 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내가 어른이 돼서 수원이 엄청 발달한 미래 도시가 되더라도 화성의 모습은 계속 그대로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화성돌기 체험후기 학생부 은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