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내에서는 안전하고 건강한 먹을거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국내 건강식품시장 또한 제약시장에 필적할 만큼 성장하였다. 먹을거리 안전과 직결되는 농산물에 대한 연구 정보 또한 매우 중요한 시점이 된 것이다.
올해 초 새 정부가 출범한 후 창조경제를 통한 새로운 성장동력에 대해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국민의 건강과 안전한 식품산업을 위해 미래 한국의 먹을거리 산업에서 농산업이 어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지 아직은 불분명하지만, ‘농업기초연구’가 창조경제에서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당장 수출 또는 상품화로 이어지기 어려운 기초과학 분야가 흔히 그렇듯이 농업기초연구도 국가 주요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기 쉬운 분야다. 그러나 농업기초연구는 새로운 정부의 창조경제 구축에 꼭 필요한 분야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냐하면, 농업은 사람들이 먹는 식품을 생산하는 1차 산업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영향력이 매우 큰 서비스 산업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과 농산물에 대한 연구 정보가 사회·문화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예가 하나 있다. 바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만화영화 ‘뽀빠이’다. 평소에는 멍청하게 얻어맞던 뽀빠이가 힘을 쓰기 위해서 꼭 먹어야 하는 것이 바로 통조림에 든 시금치다. 이것이 뽀빠이 힘의 원천이자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뽀빠이는 시금치만 먹으면 당장 ‘철의 사나이’로 변해 천하무적이 된다. 시금치를 먹어 강력한 힘을 가진 뽀빠이는 위험에 빠진 애인 ‘올리브’를 구하고 단숨에 악당 브루투스를 쳐부순다.
세상에 채소는 많다. 그런데 왜 뽀빠이는 시금치를 먹어야 힘이 나게 되었을까? 그리고 언제부터 그렇게 많은 시금치를 먹게 되었을까? 뽀빠이와 시금치의 관계는 지금으로부터 140년 전인 187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 화학자 에릭 울프(Erich von Wolf)는 여러 채소의 철 함량을 조사 중이었다. 조사 결과를 기록하던 중 시금치에 대해서만 점 하나를 잘못 찍고 말았다. 그가 실험한 시금치의 실제 철 함량은 100g당 3.5mg이었는데 점이 사라지는 바람에 논문에는 35mg으로 발표되었다(국내 시금치 100g당 철 함량은 2.2~2.6mg, 출처; 2006년 농촌진흥청 식품성분표).
이 농도의 철은 실로 엄청난 양으로 종이 클립 하나에 해당하는 철의 양과 맞먹는다. 실험 결과가 발표되고 나자 시금치의 영양소는 전설이 되어버렸다. 모두들 이 실험 결과를 믿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시금치를 최고의 채소로 인식하게 되었고, 시금치 소비는 급속하게 증가한다. 뽀빠이 만화가 만들어진 것도 이때였다. 뽀빠이 이름을 본뜬 식당도 속속 등장하였다. 당시 미국의 시금치 소비량은 30%나 증가했다고 한다. 필자를 포함해서 뽀빠이 만화영화를 본 어린이들은 시금치에 대한 강한 인상을 지금까지 가지게 되었다.
이 잘못된 철의 양은 결국 처음 논문이 발표되고 67년이 지난 1937년에야 수정되었지만, 그 동안 사람들의 인식은 확대 재생산되어 시금치는 특별한 영양을 가진 채소로 각인되었다. 영국 의학 잡지(British Medical Journal)는 1981년에 이르러 공식적으로 이 잘못된 정보에 대한 수정 논문을 발표하였다.
농업 연구는 국민들의 먹을거리를 담당하므로 사람들의 인식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농업기초연구는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1919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뽀빠이가 시금치를 먹고 악당을 물리치는 모습에 사람들은 열광해왔다. 이 과정에서 시금치를 지구상 최고의 정력 음식에서 여느 채소 중 하나로 되돌릴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농업기초연구의 성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