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는 수직적 관계와 수평적 관계의 두 가지가 있다. 수직적 관계는 생산납품 구조로 얽혀서 갑을관계를 형성한다. 갑인 대기업이 물품을 주문하면 을인 중소기업이 납품을 하는 관계이다. 대표적인 갑을문화가 오래도록 지배하고 있는 곳이다. 납품단가 후려치기로 표현되는 갑의 횡포는 대금 지연, 주문 취소, 현물 결제, 기술 가로채기 등 다양한 수법으로 중소기업을 괴롭힌다. 이 수직적 영역은 보이지 않는 사적 거래관계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부당한 처사를 알기 어렵고, 을이 이를 외부에 알리려면 납품 줄이 끊길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니 법으로 보호하기에 한계가 있다.
중간관리자들이 당장의 이익이나 비용절감 성과에 매여서 납품기업을 겨우 살 정도로 쥐어짜면 자칫 더 큰 경쟁력을 잃게 된다.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값비싼 상품들은 대기업의 기획과 조립·판매 역할, 수많은 납품기업들이 생산한 갖가지 부품에다 외주영역인 광고, 물류까지 커다란 네트워크가 참여해서 만든 결정체, 즉 총력적 경쟁체제인 커다란 네트워크 집단 간의 대결이다. 애플집단, 삼성집단, 현대집단, 도요타집단에서 생산한 제품이 누가 소비자의 호응을 더 받느냐이다. 참여하는 구성원들이 더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경쟁에서 이긴다. 계속 쥐어짜고 다그친다고 되겠는가? 학생을 다그친다고 계속 실력이 오르는 게 아닐 것이다.
부당한 갑을관계 여전해
수직적 갑을 관계는 뒤틀리면 참여 기업 간의 피해로 나타난다. 반면에 수평적 갑을 관계는 그 피해도 크고 사회적 갈등이 첨예하다. 대기업과 다수의 중소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들과 경쟁하는 영역이 수평적 관계이다. 빵집, 슈퍼마켓, 커피집, 두부, 자동차 정비소 등 대기업이 진출하여 힘을 휘두를 경우 다수의 중소기업에 불리한 영향을 미친다. 공정한 경쟁과 공평한 기회가 보장이 되지 않아 문제가 되며, 결국 독과점으로 발전하면 소비자 선택권을 빼앗고 가격을 올리게 된다. 헤비급 선수를 라이트급 선수가 대응하기 힘들다. 많은 자영업자들의 밥그릇을 빼앗고 일자리에서 떠나게 만든다. 두 기업에 그치는 수직적 영역보다 피해가 훨씬 크게 나타난다.
2006년까지는 특정 업종에 대기업의 진출을 제한하는 고유업종 제도가 있었다. 대기업들은 이 제도가 대기업의 사업기회를 과도하게 막고 기술혁신을 지연시킨다고 주장해서 폐지되었다. 그러나 이후 기술혁신이 필요한 영역이라기보다 자본력에 의존하는 도소매 유통시장, 골목상권 자영업 분야, 먹거리 프랜차이즈 쪽으로 진출하여 사회적 갈등을 만들고 있다. 그러다 결국 적합업종이라는 규제를 6년 만에 대기업들이 다시 불러들인 것인 격이다. 규제 강도는 고유업종 때보다 훨씬 낮다.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이 민간의 중재로 진출을 자제할 업종을 정하는 방식이다. 일부는 정부가 개입 말고 이를 시장에 맡기라는 주장을 하지만 그리하려면 우리 대기업의 인식 개선이 더 있어야 한다.
이러한 수직적 갑을관계, 수평적 무소불위 관행을 합리적으로 관리하여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우리 경제의 생산성을 높여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려는 것이 동반성장의 취지다. 이것은 경제민주화의 문제라기보다 물건은 제값을 제때에 치러주고 사며, 남의 영역을 들어갈 때는 주변의 피해를 살피고 가야하는 기본적인 것들이다.
무소불위의 수평적 관계
동네 구멍가게도 외상 거래가 없어졌는데 기업거래에서 아직 외상을 하고 있다. 돈이 있어도 이웃집에 햇빛이 들지 않도록 집을 높게 짓지 못하게 규제를 하여 서로가 일조권을 누리도록 하고 있다. 자본이 있다고 막무가내로 사업을 크게, 많이 챙기기보다 이웃도 생각해야 한다. 동반성장은 규제보다 기업들 스스로 솔선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경주 최 부자, 구례 운조루 주인 윤씨, 여수 김익평씨 가문처럼, 이웃이 밥 굶지 않게 양식을 나누어 주고, 소작료를 낮추고, 일감을 만들어서라도 삯을 주는 그런 부자는 이제 나오기 어려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