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자 이덕무는 저서 ‘이목구심서’에서 독서를 하며 네 가지의 유익한 점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먼저, 조금 배고플 때 책을 읽으면 소리가 두 배로 낭랑해져서 책속에 담긴 이치와 취지를 잘 맛보게 되니 배고픔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둘째, 조금 추울 때에 책을 읽으면 기운이 소리를 따라 몸 안으로 흘러 들어와 편안해져 추위를 잊을 수 있게 된다. 셋째, 근심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 책을 읽으면 눈은 글자와 함께 하나가 되고 마음은 이치와 더불어 모이게 되니 천만 가지 생각이 일시에 사라져 버린다. 넷째, 기침이 심할 때 책을 읽으면 기운이 통하여 막히는 것이 없게 되니 기침 소리가 순식간에 그쳐버린다. 그렇다. 독서는 배고픔도, 추위도, 근심걱정도, 기침도 없게 해주는 명약이다.
이 명약은 경험해보지 못하면 절대 알 수가 없다. 선현들이 말한 독서의 마력(魔力)이다. 전문가들이 나름대로 잘 만들었다는 교과서는 교육목표를 이루기 위한 최소한의 매개체에 불과하다. 독서는 교과서의 약점을 보충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다.
여기저기에서 대학입학을 위한 논술사교육이 성행하고 있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글이란 무엇인가? 머리에 들어있는 지식이 지면에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글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식이 중요하다. 국문학자 조동일은 ‘우리 학문의 길’에서 글 잘 쓰는 방법 세 가지를 제시한다. 광범위한 독서, 창의적 사고, 정확한 표현이 그것이다. 이도 하나로 귀결된다. 축적된 독서가 있어야 사고가 왕성해져서 창의력이 생기고, 표현이 나타난다.
또 조동일은 독서의 방법으로 빠지면서 읽기와 따지면서 읽기를 말한다. ‘빠지면서 읽기’는 말 그대로 책의 내용에 빠져드는 것이다. 광범위한 독서의 결과이다. 그래서 지식이 쌓이면 책의 내용을 따지게 된다. 물론 초중고 학생들이 이 경지에 도달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일단 빠지면서 읽기의 경지를 터득해야 한다.
학생들의 독서량이 열악한 것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우려만 하는 잡초 같은 생각은 버리자. 영상과 만화에 길들여진 학생들을 독서에 빠지게 하는 방법은 선생님들에게 달려있다. 선생님들이 먼저 독서에 빠져드는 것이다. 이덕무가 말한 바 배고픔도, 추위도, 근심걱정도, 기침도 없이 해주는 명약을 경험하면 된다. 이를 학생들에게 전수하는 것이 독서교육의 유일한 방법이다.
독서목록을 제시하고 읽어라 하는 독서교육은 전근대적이다. 이런 유익한 책이 있으니 여기에 주안점을 두고 읽어야 한다는 구체적인 독서의 방법이어야 한다. 물론 내용을 상세히 알고 있어야 가능하다. 선생님들이 내주는 방학숙제 중에 가장 무책임한 것이 책 몇 권 읽고 독후감쓰기다. 학생들은 염증을 낸다. 동기 한두 줄에 인터넷에서 따온 내용에 느낌 두세 줄로 끝난다. 선생님들이 책의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독후감 쓰는 방법에 익숙하지 않기에 생겨난 결과다. 선생님들이 독서에 마력에 빠진다면 어느덧 독후감 쓰는 방법도 숙지하게 된다.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루쉰(魯迅)은 “원래 땅 위에 길이란 없다.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길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지극히 옳은 말이다. 학생들이 길을 알 턱이 없다. 이 길을 선생님들이 만들어주는 것이다. 선생님들이 독서의 경지에 이르면 학생들이 이 길을 가게 되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갈 수 있다.
이제 여름이 지나간다. 조상들이 말한 바 가을을 등화가친의 계절이라 말한다. 독서에 따로 계절이 있겠냐마는 특별히 가을은 독서에 유용한 계절이다. 고등학교 3학년 말에 허겁지겁 논술에 매달려 고가의 사교육에 빠져드는 부조리가 없어지기 위해서는 어릴 적 광범위한 독서가 절대 긴요하다. 이 열쇠를 선생님들이 쥐고 있다. 이 가을 모든 선생님들이 독서에 빠져보자. 미쳐야 미친다고 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