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01 (수)

  • 맑음동두천 25.8℃
  • 구름조금강릉 27.3℃
  • 맑음서울 26.6℃
  • 구름많음대전 25.0℃
  • 흐림대구 22.6℃
  • 흐림울산 23.8℃
  • 구름많음광주 24.8℃
  • 흐림부산 27.2℃
  • 구름조금고창 25.2℃
  • 제주 24.5℃
  • 맑음강화 25.7℃
  • 구름많음보은 24.4℃
  • 구름많음금산 25.9℃
  • 구름많음강진군 26.3℃
  • 흐림경주시 22.1℃
  • 구름많음거제 25.3℃
기상청 제공

[생활에세이]사초(史草)

 

국가기록원에 보관돼 있어야 할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실종됐다, 삭제됐다, 사전 유출됐다하여 온 나라가 시끄럽다.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정리할, 사초가 쟁점이 됐다. 사초란 당시의 역사를 기록한 실록, 사기(史記) 등을 편찬하기 위한 초고이다. 이 일은 우리나라 최근 역사의 한 부분이 지워질 수도, 왜곡될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라 하겠다.

조선시대에도 사초가 문제가 되어 능지처참을 당한, 우리 김해김씨 삼현(三賢)파의 중시조이신 탁영 김일손 선생이 계신다. 선생이 사관(史官)이었을 때 스승인 김종직 선생의 조의제문(吊儀祭文)을 사초에 실었다가 연산군에 의해 화를 당하셨다. 조의제문은 중국 초나라 의제(儀帝)가 꿈속에 나타나 패왕 황우에게 살해됐다하여, 의제를 조문하는 내용이다. 이는 곧 왕위를 찬탈하고 단종을 죽인 세조의 패륜을 비난하는 글이다. 성종실록을 편찬하던 이극돈, 유자광 등이 발견, 연산군에게 고변하면서 사단이 일어났다. 사초는 객관적인 직필과 사관의 보호를 위하여 왕을 비롯 누구도 열람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나 연산군이 금기를 깨고 열람, 연루자 50여명을 참하거나 귀양, 파직하는 무오사화(戊午士禍)를 일으켰다.

우리나라는 고려 때부터 실록을 편찬했으며 고려실록은 전란으로 인한 소실 등으로 조선실록에 비하여 간략하다. 태조에서 철종까지 편찬된, 조선왕조실록은 규모나 상세함으로 세계적인 자료이다. 실록 편찬은 왕의 사후 실록청이 열리면, 사관들은 사초를 비밀리에 보관하였다가 춘추관에 납부한다. 사관의 사초, 춘추관 기록, 승정원일기, 각 관사(官司)의 공문서, 상소문 등이 실록의 자료가 됐다. 실록이 편찬된 후에도 당쟁으로 집권세력이 바뀌면, 개수(改修)를 하기도 했다.

실록 편찬이 완료된 후에는 사초를 물로 씻는 세초작업을 통하여 먹물을 지워내고, 재생지로 활용했다. 이는 물자를 아끼는 것 외에도 당시의 상황과 사관의 생각이 여과 없이 직필돼 유출되면 큰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연산군 이전까지는 금기가 지켜졌으나 무오사화 이후에는 사관과 대신들이 불안감을 느끼게 되고, 가장 안전한 방법은 기록을 없애버리는 일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은 춘추관에 보관할 정본 이외에 3부를 더 인쇄하여 충주, 성주, 전주 등 4개의 사고(史庫)에 보관했다.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 본을 제외한 모든 실록이 불탔지만 광해군 때에 춘추관, 마니산, 오대산, 태백산, 묘향산의 5대 사고를 마련해 재출간, 모두 5부를 갖추었다. 실록은 곰팡이나 좀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하여 3년마다 꺼내어 볕에 말리는 등 엄격하게 관리됐다.

현재는 태백산본과 마니산사고에서 옮겨진, 정족산본이 남아 각각 정부기록보존소와 규장각에 보관돼 있다. 선조들의 이 같은 노력으로 우리민족의 위대한 문화유산이 된 조선왕조실록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지정됐다. 이제는 한글로 번역, 데이터베이스화되어 누구나 쉽게 열람이 가능해졌다.

조선실록에 비견할 진실된 현대 실록을 위하여 사초 훼손이 없었기를 바랄 뿐이다.

▲월간〔한국수필) 등단 ▲한국수필작가회 이사 ▲한국문인협회가평지부장 역임 ▲수필집: ‘남쪽포구에는’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