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와 바둑.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친구가 어린 시절부터 옆에 끼고 살았던 애물(愛物)이다. 젊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품목이 아니라는 생각에 바둑을 멀리했던 나는 그 친구의 바둑사랑이 조금은 의아했다. 그러나 삼국지는 달랐다. 박종화에서 장정일까지 적어도 한 쪽 정도는 눈요기를 한 터라 제법 대화가 됐다. 술잔에 달이 내려와 앉을 때까지 삼국지를 둘러싼 둘만의 이야기는 깊어갔다. 그 친구와의 공통점은 유비, 조조, 손권 등이 벌이는 정규전보다 번외전(番外戰)에 더 관심이 많았다는 점이다. 하기야 역사도 정사(正史)보다는 야사(野史)가 주는 재미가 훨씬 더하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 가운데 유독 여포와 동탁, 동탁과 여포의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돌이켜보면 그 친구는 ‘정치 한번 제대로 하겠다’는 입지를 세운 지 이미 오래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 같은 범부(凡夫)는 왜 그 이야기에 공감하고 맞장구를 쳤는지 지금도 아리송하다. 설마, 왕윤이 여포와 동탁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쓴 미인계의 주인공, 초선 때문이었을까. 각설하고. 그 친구와의 이야기는 이렇게 모아졌다.
‘어떤 일을 하든 중요한 것은 의리(義理)이지 의리(義利)가 아니다. 의로운 도리를 좇아 일을 도모해야지 의를 빙자해 개인의 이익을 구한다면 자신은 물론 그가 속해있는 조직에도 불행한 일이다. 여포와 동탁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이다.’
이쯤에 이르러 이야기는 파했고 걸음은 집으로 향했다. 동탁과 여포, 그 쓸쓸한 이야기의 사족(蛇足)은 이렇다.
정권을 잡은 후 교만과 방자가 극에 다다른 동탁은 더 많은 권력을 위해 여포를 양자(養子)로 삼았고 여포는 야망을 이루기 위해 그토록 자신을 아꼈던 양아버지, 정원을 죽이고 동탁의 품에 안긴다. 여포가 권력에 눈이 멀어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마저 저버린 역사적(?) 인물이 되는 순간이다. 결국 패악질을 견디다 못한 사도(司徒) 왕윤은 절세미인, 초선을 보내 둘 사이를 이간질시키고 동탁은 그토록 믿었던 여포의 손에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리(理)’를 버리고 ‘리(利)’를 좇는 자들의 종말이다.
최근 정부의 인사를 보면서 우리시대에도 여포나 동탁 같은 인물은 없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최정용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