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재정절벽 합의안을 백악관에 공식 전달하고 가족들과 남은 휴가를 즐기기 위해 하와이로 떠났다. 합의안 최종 서명시한 10여 시간을 남겨놓은 상태였다. 따라서 오바마 대통령이 언제, 어떤 방법으로 합의안에 서명을 할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됐었다. 의회 임기가 끝나는 시간까지 서명을 하지 않으면 합의안은 헌법적으로 죽은 법안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의회 합의가 끝나자마자 하와이에 있었음에도 마치 백악관에 있었던 것처럼 서명을 마쳤다.
어떻게 했을까. 정답은 ‘오토펜’이었다. 대통령의 지시 아래 백악관이 승인하면 대통령의 서명을 합의안에 자동으로 ‘새겨 넣는’ 서명장치가 사인을 대신한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이 같은 사실은 정치 쟁점으로 떠올랐다. 특히 2011년 애국법을 연장할 때 유럽을 순방 중이면서도 오토펜을 사용한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욱 거셌다. 공화당 의원 21명은 대통령에게 법안에 다시 사인할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오토펜은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통령이 일반인으로부터 오는 서한까지 일일이 답해주다 보면 하루에 1만장 이상의 서류에 사인을 해야 하는 업무가 힘들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 이전까지 법안은 제외됐었다.
그렇다면 기계가 대신한 사인은 효력이 있나 없나. 아직 논란이 계속 되고 있지만 진짜인가 아니면 가짜인가에 대해선 경매가격으로 판가름 난 지 오래다. 1962년 케네디 대통령 당시에도 직접 쓴 것은 3천 달러에 거래됐으나 판독에 어려움은 있지만 오토펜에 의한 사인은 아무리 똑같은 것이어도 1센트를 넘지 못했다고 한다.
정부가 제대하는 군인들에게 대통령 ‘친필 서명’이 들어간 전역증을 주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군 복무에 대한 자부심을 드높이고 사기를 진작시킨다는 취지다. 그러나 벌써부터 과연 친필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서명인가에 대해 말이 많다. 일부에선 전시성 정책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시기에 2006년 미국 도널드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이 전사한 장병의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에 오토펜으로 사인을 해 지탄을 받은 사실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