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뜸했던 ‘기러기 아빠’의 자살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8일 오후 9시43분쯤 인천 계양구의 한 빌라에서 A(53)씨가 숨져 있었다. 시신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친구 B씨는 A씨가 최근 ‘죽고 싶다’라는 말을 자주 했는데 휴대전화가 꺼져 있길래 집에 가봤더니 숨져 있었다는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숨진 A씨는 “끝까지 책임 못 져서 미안하다. 아빠처럼 살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 정말로 숨 막히는 세상”이라는 유서를 남겼다. 기러기 아빠는 가족들을 외국에 유학 보내고 홀로 사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다. 이 시대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A씨는 2009년 아내와 고등학생이던 아들 둘이 미국으로 유학을 간 뒤 4년간 한국에서 혼자 살며 외로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 있는 가족들은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 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항공권을 마련하기 어려워 4년간 가족들을 단 한 차례 만나지도 못한 채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기러기 가족의 극단적인 비극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 같은 사례는 지난 몇 년 동안에도 가끔씩 있었다. 가족이 떨어져 살면서 불륜에 빠지거나, 사업 실패, 또는 자살 등으로 이어져 결국에는 가족이 해체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러기 가족’은 의사·변호사·대기업 임원 등 고소득층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었으나 최근 들어서는 중산층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우리 주변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는 사례다. 우리 사회의 1등 지상주의 심리와 교육 불신에 따른 과도한 교육열에서 비롯되는 현상으로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통계에 따르면 현재 초·중·고 조기 유학생이 2만여명에 이르고, 유학·연수비용으로 10조원 안팎의 돈이 지출된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 가운데 부모의 보살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초·중등생이 70%를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공교육이 정상화되고, 우리 사회에서 살벌한 경쟁체제가 완화되면 기러기 아빠 현상은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조기 해외유학을 결정하는 사람들도 곰곰이 생각해볼 대목은 있다. 어떻게 하든지 자기 자녀를 출세시키겠다는 이기심은 없는지, 무분별한 영어 조기교육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그리고 장기간의 가족 이별이 가져올 갖가지 부작용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적과 출세지상주의를 타파하는 것도 시급한 문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기회를 찾아 한국을 떠나는 ‘엑서더스’ 현상을 지속적으로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