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햇살인가 하여 나와 본 내리천 양지바른 돌 틈.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 해바라기하고 있는 민들레가 보인다. 조금이라도 햇살 더 받으려 손바닥 벌리듯 펼친 잎. 찬바람 피하느라 키 키우지 않고 납작 엎드린 자세로 뿌리에 붙은 채 잎을 내놓은 그 영특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흔히 잡초라 칭하는 그 풀꽃들에게도 모두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 그들의 종족을 이어가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만의 방법을 총동원하여 살아갈 줄 아는 풀꽃. 인간의 기준으로 만들어 붙인 잡초라는 이름이 아닌 그들 각자의 일생을 놓고 보았을 때 더없이 소중한 그들만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마치 군중 속에 묻혀있는 사람들 개개인의 소중한 삶들처럼.
많은 사람들은 우뚝 솟아오른 몇몇의 사람들만 기억하고 그들의 삶을 올려다보며 더 크게 부풀려 평가하기도 한다. 그들을 스타, 또는 공인이라 칭하며 그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은 마치 하잘 것 없는 잡초가 아닌가 하는 자책감에 시달리게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숱한 사람들은 스타 또는 시대의 인물이라 칭하는 그들의 외모를 닮아가기 위해, 그들의 경제력을 좇아가기 위해, 그들의 지식을 흉내 내기 위해 뛰고 달리고 억지를 부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식물, 동물이 같은 종 같은 색깔이라면 그보다 더 황당한 일이 또 있을까.
이제 곧 들판을 가득 채울 풀꽃들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다양하다. 키 낮은 자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남들이 잎을 내놓기 전에 얼음녹자 바로 잎을 내어 미리 햇살을 확보하고 영양분을 취할 줄 아는 얼레지. 온몸의 향기로 늦가을 곤충도 불러낼 줄 아는 기술을 익혀 늦은 가을에도 당당하게 꽃을 피우는 꽃향유나 산국.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려 멧돼지 따위가 아무리 파먹어도 깊이 박아둔 뿌리 끝에서 또 다른 싹이 돋아나게 하는 비늘줄기를 갖춘 말나리. 추위를 견뎌내기 위해 심지어 몸에 털을 만들어 보온을 하기까지 하는 산솜다리 등. 갖가지 나름대로의 살아가는 비법을 찾아 자연의 요소요소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틈새를 채우며 살아가고 있다.
한때는 나도 비슷한 꿈을 이야기하고 함께 그 꿈을 키워가기 위해 악착같이 달렸던 기억이 있다. 며칠 전 수십 년 만에 그 함께 꿈을 키웠던 여고동창들을 만났다. 지나온 시간만큼 달라진 모습.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각자 다른 자기 색깔을 찾아 적극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삶. 긴 세월 지나 만나본 그 다양한 모습들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각자 자기 개성을 살려 키워낸 갖가지 결실, 그 다양함이야말로 질리지 않고 오래 보존될 진정한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결국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풀꽃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서로 배려하며 자기 삶을 채워갈 때 그 또한 자연과 더불어 보기에 참 좋은 그림이 될 것이다. 들판을 가득 채운 풀꽃들이 함부로 버려질 잡초가 아닌 더없이 귀한 자연의 바탕이 되듯 풀꽃처럼 살아가고 있는 보통사람들이야말로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는 최고의 에너지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 속에서 풀꽃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 언제 어디서나 풀죽지 않고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그 풀꽃들이 나는 참 좋다.